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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영어 교육의 문제점
조기 영어 교육의 문제점
  • 박영근 편집인
  • 승인 2006.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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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최근 교육부가 9월부터 50개의 초등학교에서 시범적으로 2년 동안 1~2학년을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결과를 보고 확정하겠다는 속셈이다. 시범학교를 선정하는 것도 문제이며, 그 학교에 많은 당근을 줄 게 뻔하다. 따라서 나라 안이 시끌벅적하고, 저마다 논쟁의 날을 세우고 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시기상조이고,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인성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정체성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높고, 모국어 습득에 적지 않은 폐해가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위대한 민족은 세 가지 자서전을 쓴다. 한 권에서는 역사를, 다른 한 권에서는 예술을, 나머지 한 권에서는 그 민족의 언어에 대해서 쓴다. 존 러스킨의 명언이다. 언어는 한나라 문화의 건강성을 가름하는 척도이다. 언어는 한 민족의 생명을 궁굴리는 살아있는 곡식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가꾸고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한다. 하지만 세계화라는 구호 속에서 우리네 언어 현실은 실속과 명분을 다 잃어버리고 있다. 모든 강의를 영어로 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짓이 대학가에서 늘어나는 추세이다. 영어로만 강의하는 국제고등학교를 새로 세우겠다는 계획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영어식 작명까지 유행하고 있다. 말리(茉莉), 수지(秀志), 제인(濟仁), 수산(蓚汕), 리나(莉那), 지오(智奧), 난시(蘭詩) 등이 바로 그것이다. 영어식 이름에 한자까지 곁들여 이름을 지어주는 우리네 부모들. 모국어가 ‘없는’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비뚤어진 현상이자 잘못 흘러가는 세태의 반영이다. 한국이 영어권 국가라도 되려는가. ‘모든’ 국민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언어학자 커민스는 “모국어가 잘 발달되어 있지 않은 단계에서 제2언어를 배우는 것은 언어발달에 장애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지능개발에도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본 상식을 한번 더 짚고 넘어가자. 언어는 단순한 모방이나 암기로 습득할 수 없는 법이다. 우리의 사고와 정서에 밑거름이 된 게 바로 우리말이다. 한국인은 한글로서 논리력을 키우고, 정서를 북돋우고, 민족 문화를 일구어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언어는 사고의 체계적 작용에서 나오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따라서 영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도 우리말을 바르게 쓰려는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말이다. 모국어는 한 나라와 한 국가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정신적 指紋이다. 일찍이 주시경 선생은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린다”고 말했다. 곱씹어 볼 시점이다.

박영근 / 편집인·중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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