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7:50 (목)
튀르키예 지진은 예측할 수 없었을까?
튀르키예 지진은 예측할 수 없었을까?
  • 김소영
  • 승인 2023.02.20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아쉽게도 튀르키예 지진만이 아니라 지진 자체를 과학적으로 정확히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미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지진을 예측한다는 것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 어디서 일어날지, 언제 일어날지, 얼마나 크게 일어날지.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지질학자들의 고민이다. 

그래서 지질학자들은 지진 가능성을 나타내는 위험지도(hazard map)를 만든다. 그러나 이 역시 수년에서 수십 년 단위여서 언제 피신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주지는 못한다. 고육지책으로 과학자들은 지진 예측을 위해 지질적 요소만이 아니라 동물의 이상행동이나 땅울림, 지형이나 지하수 수위 변화, 발광현상 등 다양한 징후를 연구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직전 발생한 쓰촨성 대지진의 경우 리히터 규모 8.0으로 사망자가 7만여 명에 이르렀다. 그런데 수천 마리 두꺼비 떼가 이동했다던가 동물원 기린이 벽에 머리를 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머신러닝으로 방대한 과거 지진 데이터를 분석해 예측의 정확성을 높이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진 발생 사흘만에 피해지역을 방문한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있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물론 과학적 지진 예측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그의 발언이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예측이 아니었다. 아무리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해도 튀르키예와 시리아 주변이 아나톨리아판, 아라비아판, 아프리카판, 세 지각판이 접하는 단층계로 언젠가는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미 20여 년 전 비슷한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기도 했다.

예측이 틀릴 때는 모델이 잘못되거나 데이터가 부족했다는 등의 여러 가지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다. 반면 예상이 빗나가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무지는 용서할 수 있어도 무능은 용서하기 어렵기에. 

우리가 이미 군사정권 때 경험했듯이 권위주의 정권일수록 민주적 정당성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 체제의 성과에 집착하게 된다. 말하자면 유능함으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20년 철권통치를 유지하고 있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1999년 1만 7천 명의 사상자를 낸 규모 7.6 강진에 대한 당시 정부의 부실 대응을 비판하며 권력을 잡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당시에도 이렇게 큰 재난에 준비돼있기는 불가능했다고 했을까? 아마도 내로남불일 테지만, 운명은 기구해서 하필이면 대선 일정을 앞당긴 탓에 당장의 지진 대응에 따라 본인의 운명도 갈리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지진을 과학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것처럼 정치 역시 과학적으로 예측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지면 분명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내진 설계는 지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급격한 정치·경제 변동으로 시민들의 삶이 교란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한 제도 설계를 내진 설계만큼 정교하게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는 큰 재난에 준비돼있기가 불가능하다고 우기기 전에 어떻게 이렇게 큰 재난에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