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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가 아니라 인프라다
이벤트가 아니라 인프라다
  • 이동철 용인대
  • 승인 2006.07.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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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이동철 / 용인대·동양철학 ©
한동안 우리들에게 잠못 이루는 여름밤을 선사했던 2006년 독일 월드컵도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브라질의 중도 탈락으로 월드컵이 아니라 ‘유로컵’이 되었다거나, 골잔치를 기원하며 ‘팀 가이스트’를 새 공인구로 채택했지만 극심한 골 가뭄에 시달린 점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특히 결승전에서 있었던 지단의 ‘박치기 퇴장’은 영웅의 명예로운 고별을 희망했던 많은 이들에게 상당한 충격과 파문이 될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쉬운 것 중 하나는 한국 대표팀이 승점 4점의 좋은 성적을 올리고도 대망의 16강 진출에 실패한 점이다. 주심의 편파판정 때문이라는 여론도 일시적으로 들끓었지만, 객관적인 실력의 격차를 인정하는 편이 더욱 타당한 태도라고 생각된다.

사람에 따라서 한국의 16강 탈락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겠지만, 지구촌 최대의 축제에 전적으로 목을 매달았던 기업이나 방송국 등은 4년마다 찾아오는 이 절호의 찬스를 최대한 활용하지 못한 점에서 통탄의 염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16강에 진출했을 때 국가브랜드 상승효과 1조 7천억원과 기업 이미지 제고로 의한 수출증대 효과 14조 7천억원 등 약 16조원의 경제효과를 얻을 수 있노라고 현대경제연구원과 한국경제연구원이 추산했음을 감안하면,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한편 재경부가 발간한 2002년 경제백서는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쪽이 이룬 26조 5천억원의 경제효과 중 국가브랜드 홍보효과가 7조 7천억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나면서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한국 축구의 한계와 약점을 지적한다. 축구의 기본인 패스도 보여주지 못했고 제대로 된 슈팅도 얼마 없었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 히딩크 감독의 마술은 고액 단기과외의 반짝 효과로 그쳤던 모양이다. 따라서 유소년축구의 육성, 프로축구의 활성화 등 기본과 기초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여느 세상사와 마찬가지이다. 그런 기반이 없이 대표팀과 월드컵에만 ‘올인’해봐야 16강 진출의 목표에 결코 골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월드컵의 경제 효과에서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브랜드의 제고 또한 그러하다. 4년마다 거행되는 대형 이벤트에 치중하기보다는 한국의 이미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본적인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선행과제다. 예컨대 해외여행 차 공항에 나갈 때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한국을 상징할 만한 적절한 가격의 적당한 선물을 고르기란 정말 지난한 일이다. 진열된 대다수 공예품들이 유감스럽게도 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설령 월드컵의 결승에 진출하더라도 ‘고급’과 ‘선진’이라는 국가 이미지와 브랜드를 획득하고 유지할 수 없을 터이다.

제아무리 축제가 중요해도 일상은 진행되는 법, 월드컵의 와중에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행사가 진행됐다. 7월 1일 제4기 민선 자치단체장 체제의 출범과 그에 따른 16개 광역자치단체장과 2백30명 기초자치단체장의 취임식이다. 4년이나 되는 단체장의 임기와 갈수록 강화되는 지방자치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취임식은 결코 간과하거나 경시할 수 없는 의의를 지니는 것이다.

이번에 임기를 마친 대부분의 전임 단체장들 역시 신임 단체장처럼 자신의 임기 동안 적지 않은 업적과 성과를 올리고자 취임 초에 결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지와 브랜드란 지자체의 경제적 가치를 제고하는 데 무엇보다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자 무기다. 더욱이 21세기는 문화의 세기가 아니던가. 그리하여 온갖 아가씨를 뽑는 이런저런 축제를 비롯한 각종 이벤트성 행사가 ‘문화’라는 미명 아래 현재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이 증언하듯이 기초와 기본을 무시한 이벤트는 이벤트일 뿐, 브랜드 구축의 인프라가 될 수는 없다.

새로 취임하는 단체장들에게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우리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결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이러한 세부적인 삶의 결에 대한 배려야말로 문화의 진정한 본령이라고. 그럴 때만이 진정한 지자체의 브랜드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문제는 이벤트가 아니라 인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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