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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진 설계 있는데, ‘내풍 설계’는 왜 없을까
내진 설계 있는데, ‘내풍 설계’는 왜 없을까
  • 김재호
  • 승인 2023.02.20 09: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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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대학원혁신 어깨동무사업 ③ 이준상 기계공학과 교수

연세대 대학원혁신지원사업인 ‘어깨동무사업’은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 지역 전문가와 함께 공동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연세대의 연구역량·인프라를 활용해 지역사회 현안을 해결하는 데 나선 것이다. <교수신문>은 이 사업을 이끌고 있는 교수를 만나 지역과의 협업 연구가 어떻게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는지 알아봤다. 세 번쨰는 이준상 연세대 교수(기계공학과)다. 그는 누구나 쉽게 사용 가능한 빌딩풍 관련 실시간 사전 예측 기술로 위험을 방지하고자 한다. 특히 시설물 중심의 재난 안전 연구에서 사람 중심의 재난 안심 연구로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지난 13일, 이 교수의 연구실에서 얘기를 나눴다.

 

올해 겨울, 사무실 부근 고층 빌딩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그곳을 지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을 정도로 매서운 빌딩풍이었다. 빌딩풍은 순간 풍속이 2∼3배 이상 증가하는 현상을 뜻한다. 빌딩풍은 1~5분 만에 풍속이 급변한다. 아울러, 건축물 배치에 따라 심할 경우 50미터 내에서도 풍속이 2배까지 바뀌는 변화무쌍한 특징을 지녔다. 빌딩풍 때문에 매년 약 120억 원에 달하는 손실비용이 발생한다. 부실 점검과 부실 안전진단이 원인이다. 전국이 초고속으로 도시화하는 가운데, 빌딩풍은 새로운 재난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부산시는 조례로 “빌딩풍은 재난”이라고 규정했다. 

이준상 연세대 교수(기계공학과·사진)는 빌딩풍, 더 나아가 태풍에 대한 인공지능 기반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과제명은 ‘경남권 빌딩풍 환경 유동 인자를 고려한 인공지능 기반 Building Profile 개발 연구’이다. 이번 연구의 핵심 목표는 경남권역 빌딩풍 시나리오에 대응이 가능한 예측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해안가에 인접한 경남권역은 빌딩풍 피해 사례가 많다. 추후 전국 단위에서 신뢰도가 높은 건물 안전 성능 관련 데이터 생성 기술을 선점해 국내 재난 안전기술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준상 연세대 교수(기계공학과)는 태풍·빌딩풍 관련 실시간 사 전 예측 기술로 위험을 방지하고자 한다. 특히 시설물 중심의 재 난 안전 연구에서 사람 중심의 재난 안심 연구로 패러다임을 바 꾸고 있다. 사진=김재호

특히 그동안 빌딩 등 시설물 중심의 재난 안전 연구를 했다면, 앞으로는 사람이 체감하는 정보를 기반으로 사람 중심의 재난 안전 연구를 진행한다. 사람 중심이란 건축물의 반응에 따른 거주자 혹은 주변 보행자의 물리적 안전·심리적 안정감까지 고려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이 교수는 세브란스 병원 조형주 교수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 빌딩풍 내 건물 거주자의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심리의 불안 정도를 뇌파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한국건설기술연구원과 학연 연계 사업으로 ‘빌딩풍 대응 거주자 안심 서비스’를 세브란스 병원과 협업하고 있다”라며 “이는 빌딩풍에서 유발되는 소음, 진동을 소리로 덮는 기술인 사운드마스킹을 사용해 저감함으로써 거주자의 심리 안정을 유도하고자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교수는 건축물 안전도를 시각화해 보여주는 모바일 AR 앱을 개발해 주변 보행자가 사전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해당 앱은 건축물 사이 소용돌이와 같은 기류 데이터를 가시화해 일반인도 쉽게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했다”라며 “현재 해당 앱은 시제품 제작 단계이며 차후 인공지능 모델 및 주변 건축물 인식 기능과 연동해 정밀한 알림 서비스까지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좀 더 쉽게 빌딩풍을 설명했다. 바람이 세면 길게 이어지며 빌딩 전면이 아닌 후면에서 난류 유동 회오리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전면이 아니라 후면 유리창에 먼지가 쌓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회오리 바람은 많은 피해를 불러온다. 그래서 사전 예측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선 관련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 

이 교수는 국토교통부의 환경영향평가에 다음 두 가지를 포함하자고 강조했다. 우선 신축 건물의 경우 건축물 표면의 압력 정보, 바람 세기 등 정보를 신축 후 5년간 공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신축 설계를 진행하는 경우 빌딩풍 인자를 넣어야 한다. 그래야 새롭게 발생한 빌딩풍 재난을 미리 예측·대응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미 빌딩풍 유발 풍압 데이터 1천100건을 구축해놨다. 

 

지역 실측 데이터로 기술 검증·안정성 해석

실제로 부산의 주상복합 건물인 엘시티는 피해 사례가 발생했다. 그래서 공동 연구팀인 권순철 부산대 교수 연구팀이 제공한 엘시티 등 빌딩풍 피해 지역의 실측 데이터를 개발 예정인 기술을 검증하는 데 활용했다. 또한 경상국립대는 빌딩풍 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현장 실사를 하며 빌딩풍 피해를 확인했다. 특히 연세대가 제공한 풍압 데이터를 기반으로 건축물 변형 해석과 BIM(빌딩 정보 모델)·GIS(지리 정보 체계) 플랫폼 연계로 건축물별 안정성 해석을 수행했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은 융합형 빌딩풍 인재 양성이다. 이 교수는 “학제간 장벽을 넘어서는 초월적 인재 양성과 융합형 기술 개발을 진행해 장기적 기후변화에 대응 가능한 기술과 인재 양성의 기반을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경상국립대 건축공학부 인턴생을 대상으로 빌딩풍 관련된 전산 유체 역학, 대기 경계층 세미나를 열었다. 연세대 기계공학부 학부생을 대상으로는 신지욱 교수, 권순철 교수 세미나를 연동했다. 이와 관련한 빌딩풍 관련 프로젝트도 실시했다. 

연세대는 전산 유체 역학, 경상국립대는 건축물 구조 해석 및 안정성 예측, 부산대는 해양·항만학으로 각자 세부 연구 분야가 다르다. 그래서 처음에는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있었다. 소통을 위해 연세대 석박사 통합과정생을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학생연구원으로 파견 근무를 보내거나 BIM 연계 연수를 진행했다. 또한 다학제 통합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서로의 전문 용어를 배우면서 접근 방식을 동기화했다. 

 

사후 처리 방식에 의존하는 태풍·빌딩풍 피해

2019년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의 수는 29회로 역대 가장 많았다. 2000년대 들어서 태풍 피해액은 약 10조 원에 달하며 향후 이상기후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사전 대응을 잘 하고 있을까? 이 교수는 “고층건물의 내진 설계는 있는데, 내풍 설계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해외의 경우, 2006년 강풍에 의한 인디애나 스퀘어 빌딩 파손이나 2018년 태풍 망쿳에 의한 홍콩 내 빌딩 파손 사건이 있었다. 이후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 등은 태풍 전담센터를 운영하며 고층 건물의 빌딩풍 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다. 더욱이, 빌딩풍을 친환경에너지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해 건물 에너지 절감에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는 사후 처리 방식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교수의 어깨동무사업 연구과제가 더욱 중요하다. 

이 교수는 “국내에는 태풍 전담센터는 물론, 빌딩풍 환경영향평가 규정 또한 없어 재난 발생 후 사후 처리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해안가에 위치해 기후변화에 민감한 홍콩, 싱가포르 등과 학술교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열섬 효과(heat island)를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다. 

이 교수는 “연구팀이 구축한 작업 흐름도는 기상 모델링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어 빌딩풍과 더불어 열섬 효과를 복합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라며 “열섬 현상과의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해질 경우, 빌딩풍 피해가 발생했던 강남, 분당과 같은 도심지역으로 영역을 확장해 예측 모델이 현실화될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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