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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무너지는데, 그 사이를 버티고 섰네"
"하늘이 무너지는데, 그 사이를 버티고 섰네"
  • 이중 前 숭실대
  • 승인 2006.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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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중국산책 (10) 모택동의 絶唱

모택동은 이백의 ‘蜀道難’을 특히 좋아했다. 중국 서남의 오지인 촉으로 가는 길의 높고 험함을 노래한 이 시에서 이백은 “촉으로 가는 길, 참으로 험난하구나. 하늘 오르기보다 더 힘드네(蜀道之難難于上靑天)”라는 구절을 세 번이나 썼다. 모택동의 험난한 인생도 이 시 속에 녹아있다고 할까. 지금의 사천성, 중경 등지가 옛날의 촉나라 땅이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천하를 삼분하며 나라를 일으켜 세운 곳이 촉이다.

촉에서 태어나 25~26세까지 살았던 이백은 촉도의 험난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촉으로 가는 친구를 보내며(送友人入蜀)’란 시는, 장안에서 험한 촉나라 땅으로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인생 만사 다 그렇고 그런 것이 아닌가, 자연에 맡겨 마음 편하게 살자며 친구를 위로하는 애틋한 우정의 시이다. 시에 나오는 ‘군평’은 당시 성도에 살던, 한 나라의 이름 있는 선비로, 학문뿐만 아니라 운세와 점도 잘 보았다는 嚴遵이란 사람의 자이다.
    
“잠총이 열었다는 촉나라 길은 / 험하기도 하여라 어이 가시리 / 얼굴 앞에 갑자기 산이 치솟고 / 말머리에서 돌연 구름이 이네 / 기나긴 잔도엔 꽃나무 우거지고 / 봄 강물은 촉성을 싸고 흐르네 / 사람의 운명이란 정해 있나니 /  굳이 군평에게 물어 무엇 하리(見說蠶叢路 崎嶇不易行 山從人面起 雲傍馬頭生 芳樹籠秦棧 春流?蜀城 升沈應已定 不必聞君平)
   
이쯤에서 우리는 모택동의 시 한편을 음미할 때가 된 것 같다. 앞에서, ‘촉으로 가는 길, 참으로 험난하구나. 하늘 오르기보다 더 힘드네’란 이백의 시를 인용한 바 있지만, 험하고 웅장한 산에 대해서 모택동 스스로 읊은 시가 있다.

1934년에서 1935년 사이, 홍군은 2만 5천리에 걸치는 대장정의 험한 길을 가고 있었다. 총체적인 패퇴이며, 어느 곳에서 활로를 찾아야 할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험난한 행군이었다. 이 기간에 쓴, ‘十六字令 三首 山’이란 시이다.

산, / 닫는 말에 채찍질하며 그냥 안장 위에 / 놀랍구나 뒤돌아보니 / 하늘과의 사이 겨우 석자 세치뿐 // 산, / 강과 바다 뒤집혀 세찬 파도 출렁이네 / 산세는 급하게 내달리며 / 만마가 싸움에 한창이네 // 산, / 푸른 하늘 지르고도 서슬이 시퍼렇다 / 하늘이 무너지려 하는데 / 그 사이를 버티고 섰네(其一 山, 快馬加鞭未下鞍. 驚回首, 離天三尺三. 其二 山,  倒海?江卷不巨瀾. 奔騰急, 萬馬戰猶?.  其三 山, 刺破靑天鍔未殘. 天欲墮, 賴以?其問)

모택동의 시는, 얼른 보면 한낱 정치시나 선동詩 같고,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인상을 준다. 세련된 현대시에 맛을 들인 우리 눈에는 특히 그러하다. 하지만 그의 시는, 중국의 고전과 옛날 민요 같은 데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많아 註解를 봐야 제대로 읽히는 경우가 많다. 작자는 이 시의 몇 군데에 原註를 달고 있는데, “하늘과의 사이, 겨우 석자 세치뿐”이라는 첫 구절도 다음과 같은 민요에서 따온 것임을 밝히고 있다.

위로는 고루산이요, 아래는 팔보산, / 하늘과는 석자 세치 사이로다. / 사람이 넘으려면 머리 숙여야 하고, / 말이 넘으려면 안장을 내려야 하네(上有??山, 下有八寶山, 離天三尺三. 人過要低頭, 馬過要下鞍).

특히 마지막 구절, “하늘이 무너지려 하는데 그 사이를 버티고 섰네”는 모택동의 운명과 운세를 비장감 있게 표출한 절창이라 아니할 수 없다.

‘元旦’ 이란 시가 있다.

영화, 청류, 귀화 땅을 지나가노라 / 길은 오솔길, 숲은 우거지고, 이끼는 왜 그리도 미끄러운가 / 오늘은 어디로 가야만 하나 / 무이산 아래로 곧장 가야지 / 굽이굽이 짙푸른 산 아래 아래로 / 바람에 나부끼는 붉은 깃발 그림 같구나(寧化, 淸流, 歸化, 路隘林深苔滑. 今日向何方, 直指武夷山下. 山下山下, 風展紅旗如畵).

1930년 1월 30일, 음력 설날, 말을 타고 산골짜기를 누비면서 쓴 시라고 한다. 정강산에서 내려와 복건성, 강서성 일대 산악지대를 헤매며 해방구를 마련하려고 안간힘 할 무렵 같다. 영화, 청류, 귀환 등 세 곳 현은 당시 복건성에 속한 험한 오지였다. 그는 주덕의 부대와 만나기 위해 서쪽으로 험한 산길을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설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시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별도의 해설이 필요하다면, 중국 혁명과 관련하여 당시의 정황과 전황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에서 굳이 당시 홍군의 사정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산길은 비좁기만 하고, 숲은 우거지고, 바위와 풀은 미끄럽기만 할 것이다. 인생이란 원래 이런 것이 아니던가. 오늘은 어디로 가야만 하나. 날마다 이 명제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질 것이다. 모택동에겐 눈앞의 무이산이요, 우리에게도 각자 제 갈 길이 바로 눈앞에 보이기도 하고, 또 안 보이기도 할 것이다.

▲얼어붙은 장백폭포 ©

작년 연말과 올해 첫날을 나는 백두산 자락에서 보냈다. 눈보라 휘날리는 2천 고지가 넘는 백두산 자락에서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고 싶었다. 백두산이지만 물론 안타깝게도 중국 땅이다. 멀리 얼음 덩어리가 된 장백폭포를 보면서 희한하게도 이 ‘원단’이란 시를 떠올렸다. 내게 있어 무이산이란 어디쯤일까를 생각했다. 오로지 눈에 덮인 천하 풍경 앞에서 잠시, 오늘의 거대 중국과 맞물린 한반도의 ‘今日向何方’을 간절하게 생각해보았다.

이중 前 숭실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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