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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述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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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환 고려대
  • 승인 2006.07.12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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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동아시아에서 대학입시에 논술고사를 보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데 논술고사를 치르고 들어온 학생들의 작문 능력이 중국이나 일본의 학생들보다 못하다. 논술을 채점하다보면 판박이 내용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시험지로 사고능력을 변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중국의 국어교육은 철저하게 고전 중심이다. 일본은 영어교육이 문법과 작문을 맡고 국어교육 고전과 한문에 집중한다. 한국의 논술고사에 해당하는 시험을 일본의 일부 대학들에서는 영어로 본다. 英語長文이라는 시험과목을 준비하기 위하여 학생들은 일어로 논술을 훈련하고 다시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는 연습을 한다. 교사지침서에는 학생들의 사고력을 기르기 위하여 일본의 특수성을 강조하지 말고 서양의 보편성을 가정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이 부기되어 있다.

한문과 고전은 대충 건너뛰고 국어는 논술 중심으로, 영어는 회화 중심으로 가르치는 한국의 언어 교육은 학생들을 배려하는 학생 중심 교육이라고 할 수 없다. 5년 동안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미국인이 한국 학생들의 영어가 피상적이라고 비판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학생들과는 영어로건 한국어로건 진지한 대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의 후기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사고를 하나마나 한 兩非兩是論으로 타락시킨 원인이 바칼로레아의 논술고사에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유럽의 표준에 맞추어 한국의 논술고사를 국제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의 수학능력고사인 아비투어의 경우, 논술시험에 8절지 4장을 나눠주고 330분 즉 5시간 반을 쓰게 한다.

오전에 세 시간 오후에 두 시간 반을 주고 200자 원고지 40장 분량을 쓰게 하는 것이다. 각 주의 교육청은 2년 전에 고등학교에 기초 書目과 출제방식을 알려주는데 그 기초 서목에는 괴테와 실러, 토마스 만과 우베 욘존의 책이 들어가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겨우 원고지 10장을 적어내라고 하니 유치한 논술용 안내서가 범람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개혁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한자·한문 교육을 강화하고 논술채점에서 어휘의 오용을 엄격하게 점검한다. 둘째, 국어교과서를 각 시도 교육청에서 제시하는 기초 서목으로 대체한다. 셋째, 시험 시간을 4시간으로 늘리고 논술의 분량을 원고지 20장 정도로 늘인다.

김인환 / 논설위원·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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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루한 2006-07-18 21:52:48
한문과 고전을 대충 건너뛰는 이유는 왜일까요? 국어를 논술 서술형 중심으로 평가하지 않고 객관식 선택형 문제 풀이로 현행 학생부 교과성적과 대학수능을 유지하는 제도 탓입니다. 생각한 것을 적고 말하며 새로운 느낌을 서로 나누지 못하는 수업과 평가 체제의 모순을 개혁하자면 한자 한문 교육을 강화할 게 아니라 바른 말 좋은 글쓰기 교육을 해야죠? 프랑스나 도이치가 쓰지 않듯이 한국 학생들이 중국이나 일본 사람처럼 굳이 한자를 쓸 게 아니죠? 아니 마땅히 토박이말을 살리며 한글로 제 생각을 깊이 있게 쓸 수 있어야 하겠지요. 서양글이나 한문글을 쓰지 않고 한글을 쓰는 일부터 제대로 든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요즘 논술교육은 조리찬글가르침으로 말부터 바로 잡고 바탕을 바로 잡아야 하겠지요

lovemind 2006-07-16 09:02:07
김인환 교수님이 아무런 언급도 없고,
참 실망이네요.

정윤식 2006-07-13 06:11:22
교수유감

최근 한국에서는 논술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 교수가 없다. 반면 독일의 아비투어나 미국·영국의 사립고등학교 졸업시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일본 소논문의 경우 그 시험을 치르는데 학교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자세한 지도를 해준다고 한다. 이렇게 비교가 되는 상황에서 한국 학생들의 작문 능력을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비교한다는 것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즉 어느 교수의 말처럼 무모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나 논설위원이 느낌으로 글을 쓰고 있는 마당에 말이다.

두 번째 단락과 세 번째 단락은 무얼 말하고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 설마 5년 동안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 미국인의 말을 일반화해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는 의문 역시 감출 수 없다.

요지는

중국 - 국어교육을 고전 중심으로 한다.
일본 - 국어교육은 고전과 한문에 치중, 영어교육은 문법과 작문에 중심을 둔다.
한국 - 국어교육은 논술 중심으로, 영어는 회화 중심으로 가르친다. -> 한국의 언어교육은 학생들을 배려하는 학생 중심 교육이 아니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어느 미국인의 경험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입시와 상관없는 대학생들이 아니라 전국 고등학생들이 읽는다면 어떤 소리가 나올까?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읽어도 마찬가지다. 국어교육을 논술 중심으로 가르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영어를 회화 중심으로 가르치는 학교가 대한민국에서 몇 학교나 있을까? 외국어고등학교 역시 영어를 회화 중심으로 가르친다는 이야기에 박장대소할 것이다.

우리는 이쯤에서 대학교수들 중 일부는 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성장과정에 어떠한 관심도 없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대한민국 학생들 중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이면 누구나 논술 교육이 학교에서 준비되지 않고 있는 것들 때문에 사설기관을 찾고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논술을 시행하는 대학들의 정책은 학생들을 배려해 ‘논술 출제 형식’을 딱 입시를 한 두 달 앞두고 발표한다. 이 얼마나 자상한 배려인가? 사설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태도와 고등교육을 ‘대학정론’지나 다른 ‘언론매체’에 기고하는 교수들 중 상당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학생들을 배려하는 대학교의 정책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현명한 교수들이기 때문일까?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가자. 이처럼 한 두 달 전에 입시의 방향을 모의고사를 일러주는 대학들은 학생들의 적응력을 길러주고자 실제 시험은 모의고사와 다른 방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서울대 모의와 06정시, 고대 첫 모의 수리논술이 대표적이다. 즉 한국의 대학과 교수들은 자신들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과 그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지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 두 해도 아니고 이런 방식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없이 짧게는 01년부터 논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았겠느냐는 것이다.

(고대교수님의 글이다 보니 한 마디 더 덧붙이자. 강남 학생들 중에는 현직 고대 교수들의 자제들이 상당 수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자제들을 통해 퍼지는 소문 중 고대 수리논술 채점은 “선생님 그 얘기 들었어요? 제 친구 아빠가 고대 이과 교순데여, 갑자기 학교에서 불러서 가봤더니 이과논술 시험지 주면서 채점하라고 그랬대여~ 그런거보면 변별력이 없는 것 아니에여?”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거다. 이런 글을 읽으면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예시가 얼마나 독자들을 당황시킬 수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후 단락들의 요지는 이렇다

한국의 논술고사를 유럽의 표준에 맞추어 구제화해야 한다. 그 방법은 네 시간동안 4000자 분량의 글쓰기를 준비시키는 것이다. 또한 그 과정에 한자·한문의 활용을 장려하고, 국어교과서를 교육청에서 제시하는 기초 서목으로 대체함으로 준비토록 한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근거가 적절하지 않은 주장은 그걸 읽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뿐이다. 읽어서 도움 되는 글이 얼마나 많은데 비논리적인 교수의 글을 읽으면 괴로워해야 하는가? 저자는 레비스트로스의 일리가 있는 주장을 근거를 들어 반박하지 않을 것이라면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다. <슬픈열대>를 읽지 않은 수많은 교수들과 다르다는 걸 티내고자 함인가? 또 왜 ‘논술고사의 표준을 유럽에 맞추어 국제화해야’ 하는가? 이런 글쓰기를 사설 학원들 중 일부는 아주 좋지 않은 글쓰기의 사례로 제시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대학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 단단히 각오하고 이런 글을 통해 준비토록’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가 교수의 글에 대한 반론이었다. 그렇다면 논술에 대한 내 생각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입시방향 이렇게 바뀌길 희망한다.

한국 대학에서 고등학생들의 쓰기를 평가했던 것은 -내가 갖고 있는 자료 내에서 -1970년대 초반 국어시험에서 한 두 문제씩 출제됐다. 그러던 것이 1984, 1985년 두 차례 정식 논술고사가 치루어졌다. 이후 1994년에 다시 연말에 치루어지던 시험이 2001년부터 1학기부터 학생들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 시험문제들을 살펴보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한 문장으로 주제 표현하기, 110-140자, 혹은 300-400자 미만으로 요약하기, 300-400자 분량으로 결론단락 써보기·창의적으로 써보기, 500-600자 분량의 제시문 반박하며 써보기, 800-900자 분량의 공통주제 찾아 써보기, 1000-2500자까지 논술 문제의 요구조건에 따라 써보기 등 다양한 방식이 출제가 되고 있다.

특히나 최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가 발표한 통합 논술은 서두에 거론했던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 아비투어, 일본의 소논문, 영국·미국 사립고등학교 졸업고사 등의 문제보다 더욱 발전된 형태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1960년대 C.P 스노우가 <두 문화>를 통해 지적했던 학문간 넘나들기를 대입시험에 시도하는 나라는 한국외에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언어와 수리 문제를 결합한1) 형식의 문제는 그 바람직한 출제방식 덕분에 ‘그렇다면 누가 이 문제를 가르치고 평가할 수 있느가?’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말이다.

사실 논쟁이 되지도 못했다. 학생들의 글을 채점할 인문계 교수들 중 아직도 수열이나 확률, 통계가 가능한 교수가 일부 학과 교수를 제외하고 얼마나 되겠는가? 역으로 자연계 교수들 중 인문계의 글쓰기를 제대로 평가할 교수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교수들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3개 대학 통합논술 모의 문제를 풀어보시기 바란다. C.P스노우의 지적에 공감하고 그 공감을 현실에서 실천한 일부 교수가 아니라면 체점을 떠나, 풀기조차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런 문제는 채점을 담당하게 될 교수 혹은 조교?뿐만이 아니라 대학에 진학시켜야 하는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더욱 문제다. 논술의 정식교과목화 논의와 함께 논술을 국어과 졸업자들이 맡아야 할지, 철학과 졸업자들이 맡아야 할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논술은 ‘누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역시 문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통합논술의 방향에 적극 찬성한다. 다만 현재 그 논술을 지도해야 하는 선생들과, 채점해야 하는 교수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욕만 앞서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입시의 방향이 통합교과적으로 가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그러기 위해 끈기를 갖고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논술 출제 경향이 저자가 언급했던 프랑스나 독일처럼 1년이나 2년 전에 미리 공지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이 현행처럼 전교조나 시민단체, 혹은 대학측의 변덕으로 갑작스럽게 뒤바뀌는 일이 없어야 한다.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힘든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공교육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기출문제는 모두 공개되어야 한다. 최근 몇몇 대학들은 자신들의 저작권을 언급하며 기출문제 사용을 경고하거나, 기존 기출문제들 중 일부만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있다. 그런 이유로 고대 지망생들의 경우 수리논술 초장기에 비공개로 인해, 혹은 전혀 상관없는 모의 수리논술로 큰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연대 면접 문제 역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위의 두 가지와 관련지어 난 대학들이 삼불정책을 걸고 넘어지는 교육부와 전교조, 시민단체들의 항의에 감추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길 바란다. 그건 대학의 신입생 선발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개인적 가치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학은 자신들의 입장을 비판만 하며 문제 삼는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그 입장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셋째, 장기적으로 논술과 면접시험 시간을 대폭 늘려야 한다. 대학교육의 목표가 학생들 개개인의 자아실현을 도와줌과 동시에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면, 입시 역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 중 전 세계적으로 점차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는 토론 능력과 쓰기 능력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현재 가장 길게 평가하는 20분 면접 시간에 30분 이상의 집단 토론을 추가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최근 기업들이 신입사원 선발고사에서 집단 토론 시간들을 늘리는 것 역시 실질적 필요성의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넷째, 다른 나라의 선발 방식이 국가적 차원에서 공개되어져야 한다. 즉 졸업시험이나 입학시험, 입사시험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공개된다면 그것을 토대로 세계적 흐름을 읽을 수 있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방향을 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중에 외국 입사시험 출제 방식에 대한 책이 소개되거나 프랑스 바칼로레아 문제 중 일부를 기획력을 바탕으로 ‘논술 대표 교재’로 포장해 소개된 적이 있긴 하지만 이는 전체 흐름을 짚어주지 못하고 있다. 일반 출판사들이 외국의 사례들을 번역하지 않는 이유는 시장성 때문인데, 그런 이유로 정부 주도하에 이런 책들이 번역되거나 기획되어 출판되길 희망한다.(현재 사비를 들여 일본의 소논문을 번역하고 있고, 다른 나라의 시험 문제 번역자를 찾고자 하는데 용이치 않다. 관심 가는 사람이 있다면 연락주기 바란다. 대학교수들이 자기들만 몇몇 시험문제를 보고 언론매체를 통해 기고하기보다 그 시험문제를 공개하면서 기고하길 기대한다.)

다섯째, 좋은 글쓰기와 바람직한 말하기에 대한 공론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대학교수들이 논술에 대한 유감을 드러내는 내용 중 가장 많은 지적이 ‘판박이 글’이다. 그런데 대학교수들을 포함해 많은 기고글들을 동일한 주제별로 분류해놓으면 ‘판박이 글’이 되고 만다. 나는 동일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나올 수 없다고 본다. 몇 개의 주장이 가능하고 다양한 사례는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동일한 주장에 대한 다양한 사례나 창의적인 글쓰기를 언론 매체에서 찾아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실현가능한 공론화의 방향으로 대학교수들이 직접 모범 답안을 최소 다섯편 이상 공개해주길 바란다. 학생들의 답안을 공개하거나 대략적인 출제 의도만 밝히는 것에서 안주하기 보다는 말이다.(말하기에 대한 기존 논의가 별반 없기에 이 글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일단은 여기까지다. 이의 제기가 있다면 다시 답글을 달도록 하겠다. 끝으로 두 마디 덧붙이자면 첫째, 한국에 훌륭한 교수님 분명히 있다. ‘훌륭한’에 대한 이해가 저마다 다르겠지만 해당 교수에게 배우고 있는 학생들을 통해 아주 간혹 자신의 학교 수업에 만족한다는 이야길 듣기 때문이다. 다만 고학년으로 갈수록, 특히나 교수들과의 관계가 밀접한 대학원으로 갈수록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헌책방의 절판희귀본처럼 더욱 드물게 나오긴 하지만 말이다.

둘째, 논술에 대한 막연한 생각과 선입견으로 글들을 쓰지 않으면 좋겠다. 특히나 사설 학원의 교육이나 논술 관련 저작물들을 문제시 삼는 필자들이 많은데 좀 읽어나 보고 글을 쓰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탁석산 교수의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이나 강준만 교수의 <글쓰기의 즐거움>은 고등학생 글쓰기 지도를 하지 않으면서도(추측) 실제 학생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적절하게 하고 있다. 나는 전국 대학의 글쓰기 교재를 모두 읽지 않았다. 다만 주요대학으로 꼽히는 대학들의 글쓰기 교재는 여전히 참고하고 있지만 입시진학지도를 하는 사람들의 글이 더 실용적이라는 점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고려대 글쓰기 교재의 경우 확실히 실용적인 문제는 있지만 실용적인 글쓰기 지침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