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7-05 17:57 (화)
“밤이슬 함초롬히 머금은 꽃봉오리”
“밤이슬 함초롬히 머금은 꽃봉오리”
  • 정양모 前 국립박물관
  • 승인 2006.07.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의 美-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2) 청자참외모양병

▲청자참외모양병, 국보 94호, 높이 22.6㎝ 입지름 8.4㎝ 밑지름 7.4㎝, 12세기, 국립중앙박물관. ©
고려시대 귀족문화와 불교문화의 산물인 청자는 비록 중국에서 비롯됐지만 고려에 들어와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국과는 다른 창조적이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청자 중에서도 전문가들은 ‘청자참외모양병’과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  가장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하는데, 이번 호에서는 먼저 ‘청자참외모양병’의 아름다움을 짚어보고, 이어서 다음호에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다루기로 한다. / 편집자주

조형감각과 翡色의 은은한 스밈

이 화병은 조형상 입과 목부분(상부), 몸체부분 (중부), 다리부분(하부) 등 세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몸체가 참외모양을 본 딴 데서 참외모양(과형)화병이라고 한 것이다. 몸체 위의 입과 목은 활짝 핀 나팔꽃같이 생겼으며 몸체 밑의 다리(받침)부분은 마치 짧은 주름치마를 두른 것 같다. 잎과 목부위는 달리 생각해보면 참외꽃 같기도 하다. 참외꽃이 예쁘게 피어나면 얼마 있다 꽃과 줄기사이에 새끼 손가락반쯤이나 될듯 한 참외가 달렸다가 참외가 조금 자라면 이내 꽃은 떨어지고 만다.

참외꽃이 핀 찰나 표현

▲참외꽃 ©
나는 이 화병의 잎과 목은 참외꽃이 예쁘게 핀 모습이고 몸체는 물론 참외라고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팔꽃도 참외꽃도 아주 활짝 핀 모습은 조금은 지나쳐서 곧 더 벌어져서 밖으로 쳐지다가 오므라들게 된다. 이 화병의 꽃잎은 꽃이 활짝 핀 바로 그 순간이거나 활짝 피기 바로 전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은 몇 초 일수도 찰나 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 화병을 만든 사람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가장 아름다운 그 순간의 모습을 가슴에 품어 숨겨두었다가 이 화병의 꽃잎을 만든 것이다.


도자기는 불의 예술이고 자연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그 자연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깊이 관조하고 그 이치를 깨달아 자연의 순리대로 우리 조상님네는 살았다. 이 화병의 꽃잎도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순간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을 수 없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목부분(상부) ©
청자는 불길에 지극히 민감하다. 불길 속(가마 속)산소의 함량에 따라 비색청자도 되고 황색청자도 갈색청자도 된다. 그 뿐 아니라 불길의 온도(가마내 온도)에 따라 자화가 될 수 있는 적정한 온도일 때는 작가가 원하는 형태가 되지만 불과 10도, 20도, 30도 차이에서 쳐지고 주저앉고 일그러지는 등 바라지 않는 여러 가지 상황이 전개된다.


더구나 이와 같이 화병의 꽃잎이 얇을 경우에는 순간 온도 상승에 따라 처지고 말기 때문에 이와 같이 아름다운 꽃잎을 청자로 만든다는 것은 신기라고 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바람과 불길이라는 자연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순리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화병의 꽃잎모양이 아름다워도 꽃잎과 목부위의 크고 작음이 서로 잘 어우러져야하고 몸체인 참외모양의 크기가 적절하여 잎과 목부위와 또한 잘 어우러져야하고 다시 주름치마같은 화병받침과도 서로 잘 어우러져야한다. 이 화병은 입과 목부위와 몸체와 받침 등 각 부위의 높이와 크기 등 비례가 아주 적절하여 서로가 흔연히 어우러져 아름다운 균형미를 발산한다. 그렇다고 여기에 그쳐서는 이 화병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깨 바로 위의 약간 퍼진 목 밑 부위에서부터 조금씩 줄어들어 목 가운데에 이르러서 다시 점점 퍼지면서 목부위의 중앙에서 약간 좁아졌다가 다시 퍼지면서 꽃잎의 끝에 이르는 선의 유려, 유연함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아름다운 자태를 들어내고 있다.


이와 같이 곱고 고운 선을 지닌 병의 상부를 참외모양의 몸체 어깨 위에 사뿐히 얹어 놓았다. 곱고 고운 상부에 비해 참외모양 몸체는 참외골이 깊고 튀어나온 등성이가 힘이 있어 서로가 좋은 대조가 되며 꽃잎 끝에서 어깨에 이르는 선과 참외모양 몸체의 선이 S자형으로 상반되게 이어져서 부드러운 가운데 역동적인 힘이 있다. 이러한 병의 몸체전부를 받치고 있는 주름치마 받침은 곡선의 변화없이 밖으로 直斜線으로 조금 넓게 퍼져 의젓하고 안정된 자세를 하고 있다.

부드럽지만 맺고 끊음 분명

조금 설명이 긴 듯하지만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미술은 친근감있고 부그럽지만 각 부위의 기·승·전·결의 변화하는 점을 중요시하여 얼른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맺고 끝냄을 중요시한다. 화병이 시작되는 꽃잎은 절묘하며 복부의 중간에 석줄 음각선을 그어 길지 않은 병목중심에 조금은 지루할 수 있는 시점을 애교있게 어루만져주고 있다.


목 아래 조금 굵은 한 줄 음각선을 다시 긋고 2~3mm 간격을 두어 그 아래는 참외의 골진 곳과 볼록한 등성이와 마주치면서 양각의 橫帶線이 자리하게 하여 목과 어깨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주고 있다. 참외 몸체의 밑부위도 하부의 주름치마와 마주치면서 여기는 좀 더 의도적으로 양각 橫突帶를 만들어 연결부위를 재미있게 들어내주고 있다.


이러한 표현양식은 자칫 그냥 넘어가서 밋밋할 수 있는 부위에 畵龍點睛의 효과를 나타내었다. 한국미술은 조화미와 균형미의 아름다움이기도하다. 우리는 이 화병에서 잎과 목부위, 몸체와 하부의 기막힌 어우러짐과 균형미와 곱고 역동적면서 의젓한 선의 흐름에서 한국미의 아름다운을 본다.


▲몸체부분(중부) ©
청자 비색의 아름다움은 또 하나의 생명이다. 이 화병은 고려 인종(1123~1146)의 장릉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인종 초에 고려에 온 중국사신 徐兢이 펴낸 宣化奉使 高麗圖經에 의하면 “고려사람은 푸른도자기를 비색(翡色)이라고 불렀으며 근년 이래 그 제작이 공교(工巧)해졌으며 색택이 더욱 아름답다(色澤尤佳)”고 하였다. 당시 중국의 汝官窯 청자가 중국인의 자존심이요 지금도 세계인이 그 비색(翡色)의 아름다움을 찬탄하여 마지않는다.


당시 중국의 안목이 높은 큰 학자가 고려청자의 비색을 드높이 평가한 바로 그 시점에 만들어진 명품청자가 바로 이 화병이고 이 화병의 비색이 12세기 전반기를 대표할 수 있는 아름다운 비색이다. 이때의 비색은 안개 넘어 사물을 보듯 하나 유약 밑으로 가는 음각선도 잘 보이지만 완전한 투명도를 지니지 아니한다. 유약에는 빙렬이 거의 없고 크고 작은 기포가 많다. 이 시대 고려청자의 형태와 비색의 아름다움은 고려가사와 같이 은은하고 연연하여 길고 긴 여운이 언제까지나 가슴속에 깊이 스며있게 마련이다.


청자 상감 이전의 소위 순청자를 대표할 수 있는 청자가 이 과형화병이라면 그 다음 시대의 청자상감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청자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간송미술관 소장)을 들 수가 있다.

한층 더 유려해지는 상감청자

이 매병은 작지만 예각이 있고 기품 있는 입부위 바로 밑에 아주 낮은 목이 있고 바로 여기서부터 넓게 퍼져 내려 풍만한 어깨를 이루고 좀 더 퍼져 내려가 윗몸체를 이루다가 점점 유연한 선을 이루면서 좁아져 긴 허리가 되다가 허리중심에서 다시 퍼져 내려 바닥에 이른다. 고려에는 11세기로부터 많은 매병을 만들어냈지만 유려한 선의 흐름을 지닌 고려적인 형태로 세련된 것은 12세기전반기였다.


이 매병은 12세기말 13세기초경의 작품으로 유약은 상감시기의 밝고 명랑한 비색청자를 대표할 수 있으며 형태 또한 선의 흐름과 변화가 한 층 유려하여 상감시기 고려 매병을 대표할만하다.


이 매병에는 고려청자문양을 대표할 수 있는 운학문으로 인해 능숙하고 자연스러워 마치 한 떼의 학의 무리가 푸른 하늘에 점점이 흩날리는 구름 사이를 훨훨 나는 것 같다. 청자과형화병은 밤이슬을 함초롬히 머금은 꽃봉오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갓 피어난 모습이라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한낮까지 햇살을 받아 흐드러지게 피어난 모습일 것이다.


고려미술은 과학이 뒷받침이 되는 뛰어난 기술수준이 뒷받침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과학은 뒤에 숨고 비색과 조형의 아름다움만이 우리에게 다가선다. 이 화병이 지니는 각 부위의 흔연한 어우러짐과 각 부위간의 적절한 균형미는 12세기 전반기 바로 그 시대의 조형정신의 산물이고 그 시대의 법도이다. 이미 11세기 초경부터 시작된 이러한 화병류는 처음 각 부위의 비례가 서로 어울리지 않고 꽃잎이 너무 벌어지고 쳐진 것이 있는가하면 목이 좀 가늘고 긴 것도 있고 어깨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도 있고 받침이 너무 높거나 낮은 것 등이 있다.


이러한 예들이 12세기에 들어 각 부위의 비례가 적절해지고 서로 절묘한 균형이 이루어져 바로 이 화병에 이른 것이다. 13세기에 이르면 큰 화병이 많아지면서 각 부위가 너무 비대해지는가 하면 또한 각 부위간의 비례가 서로 맞지 않아 균형이 잡히지 않고 조화를 상실하고 만다. 따라서 이시기에는 이와 같이 각 부위의 비례와 선의 흐름과 비색이 아름다운 예쁘고 잘생긴 화병은 찾아볼 수 없다.

정양모 /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필자는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장 및 한국미술사학회 회장, 경기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의 도자기’, ‘고려청자’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