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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대학원은 ‘석사대학원’…박사과정 때 귀동냥하며 논문 써”
“인문사회 대학원은 ‘석사대학원’…박사과정 때 귀동냥하며 논문 써”
  • 강일구
  • 승인 2023.02.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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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분야 박사과정생 연구력 실태조사
이론‧방법론 학습 방법, 34.35%는 ‘독학’ 32.82%는 ‘수업’ 꼽아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된 오늘날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은 34세의 여성들이다. 이들은 대개 석사과정과 동일한 수도권 인문대에 진학했다. 사진=픽사베이

“대학원에 국가 연구비 재원을 독점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외면적으로 ‘기관재생산’은 이뤄지는 듯 보이나 연구자(학문후속세대) 재생산과 연구력 강화에는 실패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대학원에서 박사양성 모델은 찾아볼 수 없고, 좋은 해외 대학으로 유학 나가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석사를 만들어 내는 것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결국 한국의 인문사회 대학원은 ‘석사대학원’인 것이다.”

인문사회분야의 박사양성모델을 정립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김인수 대구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 송경호 연세대 BK21 박사후연구원, 이대성 원광대 HK연구교수, 이윤정 한림대 강사, 이민기 씨(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전공 박사수료), 박민철 씨(서강대 철학과 박사수료)는 그간 인문사회분야 박사과정생들 사이에서 개별적으로 제기됐던 박사과정생들의 연구생태계를 진단했다.

연구진은 지난달 발표한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력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과제: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를 통해 박사과정생에 대한 대학원의 체계적 교육 부재와 이들이 참여하는 집단연구가 연구 역량 증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연구진이 진행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인원은 총 96명이다. 또한 연구진은 이 중 82명의 응답 결과를 분석했으며 29명에 대해 표적집단면접(FGI)을 10회 진행했다.

연구진이 만난 박사과정생들은 먼저 국내 대학원은 체계적으로 박사를 양성할 교육과정이 없다고 증언했다. 박사과정에 진학했지만 석사과정과 같은 수업을 들어야 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아야 할 방법론, 데이터분석 프로그램 활용, 글쓰기 방법 등은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치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박사과정생 A는 “수업을 들으며 방법론을 배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 다른 학과 수업에서 듣는다”라고 했다. 연구그룹에 속한 한 박사과정생 B는 “박사로 가면 더 심화된 공부를 할 줄 알았으나 계속 개론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고 싶으면 알아서 커뮤니티를 찾아야만 했다. 제일 아쉬운 것은 커리큘럼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연구진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다. “이론·방법론을 공부하는 데 주로 어디서 도움을 받느냐(중복선택 가능)”란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은 독학(34.35%)이었고 이어 대학원 수업(32.82%), 연구모임(24.43%), 외부 기관의 연수 프로그램(7.63%), 기타(0.76%) 등이었다. 학술논문 작성에 있어서도 대학원 수업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한 과정생들은 많지 않았다. ‘학술 논문 작성법을 어디서 배웠냐(중복선택 가능)’는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은 응답은 선행논문(33.33%)이었고, 이어 대학원 수업(30.67%), 동료 연구자의 조언(21.33%), 논문 작성법 관련 도서(10.67%), 기타(4.00%)순이었다.

“‘국내 박사는 어떤 인재인가?’란 고민없이 박사재생산”

박사과정생에 대한 교육이 사실상 ‘방목’인 상황을 두고, 국내 대학원은 박사양성모델이 부재한 ‘석사대학원’에 머문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사회과학 분야 박사를 졸업한 C는 이렇게 말했다. “기본적으로 석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위한 프로그램 자체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박사를 하며 여기저기 귀동냥하면서, 그 사람들과 협업해 논문을 쓰니 너무 파편적이었다. 나만의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쓰고 싶어 한국에 남은 것인데, 그 목표를 계속 밀고 나가지 못했다.” 자치활동을 하는 박사과정생 D도 “기본적으로 석사대학원이다. 학교에 박사과정이 존재하지만 석사라는 1차 가공을 마쳐 수출하는 그런 곳이기에 최종 제품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연구진은 박사과정을 양성하는 모델의 부재는 단순히 교과과정 제도의 미비와 지도의 부재뿐만 아니라고 지적했다. 과정생들이 애초부터 자신이 받고 있는 교육이 충분한 것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 있는 준거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박민철 씨(서강대 철학과 박사수료)는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국내 박사보다 우수한 평가를 받는다면, 국내 박사를 유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왜 한국에서 박사 과정를 유지해야 하는지 지금부터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어떤 박사양성 모델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의 인문사회 박사과정생은…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확인된 오늘날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은 다음과 같다.
이들은 34세 수도권 출신 미혼 여성으로 석사과정과 동일한 수도권 인문대학에 진학했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이유는 학문적 성취 달성과 학업에 적성이 맞기 때문이다. 유학을 가지 않은 이유는 국내 대학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박사취득까지 6~7년을 예상했고, 현재는 4~5년 과정을 마치고 박사수료 단계에 접어들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데 가장 큰 고충으로 경제적 문제를 들었으며 최소 월 100만 원~200만 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마음에 맞는 동료 연구자를 찾지 못해서 학내에서 고립감을 느끼며 스터디를 한다. 또한 글쓰기, 방법론, 논문 작성법 등을 대학원이나 지도교수에게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BK, HK, SSK를 비롯해 공동 연구사업에 참여했지만 대부분 연구보조원이고, 연구주제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필요로 참여했다.

“개인 지식 자랑 뿐 제도적으로 무능”

박사과정생들이 유학을 택하지 않고 국내에서 박사과정에 진학한 이유는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이들이 상정한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러나 설문조사는 국내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국내에서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고 느꼈다(26.83%), 유학 갈 형편이 되지 못했다(17.07%), 국내에서 연구하는 것이 더 탁월한 결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15.85%) 순으로 답했다. 박사과정생들은 ‘좋은 연구자’란 자기의 학문 분야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우수연구자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45.12%가 ‘새로운 연구를 계속 고민하는 연구자’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서 ‘많은 논문을 발표한 연구자’는 4.88%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지식생산’이란 박사과정생들의 이상은 현실의 지원방식과 평가방식에 의해 꺾여가고 있음을 연구진은 확인했다. 박사과정생들은 BK, HK, SSK 등 공동연구로 인해 학술적 네트워크 구축과 논문을 쓰는 데 경험 축적 등 직업 경로 확보에는 도움이 된다고 했다. 독립적인 연구수행 능력이 갖춰지기 이전에 보조적인 역할을 통해서 기초적인 역량을 키웠다는 의미다. 그러나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후에는 보조적 역할로 행정 인력으로 소모되기 보다는 학위 연구주제의 한 부분이라도 고민할 수 있는 사업에 참여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박사과정생들은 경제적 이유로 연구보조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픽사베이

호남지역 박사과정생 E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연구 주제에 맞춰 스스로 연구를 기획하고, 자신의 연구주제의 한 꼭지라도 그 프로젝트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게 경력에 좋다”라고 말했다. F는 “석사과정 때는 연구보조원으로 배운 점도 많다”라며, “박사과정과 석사과정을 구분해 연구비가 지원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동연구 전반에 대한 문제를 짚는 목소리도 있었다. 박사과정생 G는 공동연구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협력 프로젝트를 하며 한국에서 인문사회가 왜 이 모양인지 생각했다. 조직으로 봤을 때 과학기술 분야는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단계까지 인문사회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진다. 인문사회 분야가 과학기술 분야와 같을 순 없더라도 저런 종류의 경험으로부터 거버넌스 혹은 이제 좀 원활히 작동하는 제도적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인문사회 연구자는 개인의 지식을 우수하게 자랑할 뿐 제도적으로 무능해, 당면 문제에 반응하지 못해 연구비 지원 방식을 축소한다”라고 부연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인문사회 분야 연구에 대한 지원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구자 일부만이 개인의 삶을 보장하거나 연구비 증액을 주장하는 것이 현실이라고도 말했다.

연구 업적을 논문으로만 평가하는 체제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논문 중심 평가가 인문사회분야 연구 환경을 협소하게 만든다는 것이 주된 지적이다. 사회과학분야 박사과정생 H는 “자료획득이나 정리는 한국연구재단 시스템에서 공식적으로 계산이 안 된다. 여러 기고도 하고 현장 연구도 하고, 자료 목록화를 많이 하더라도 결국은 논문이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박사과정생들이 이런 학계의 평가 방식에 길들여짐으로써 연구윤리적인 측면이나 학술장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들었다. 새로운 자료를 조사하는 작업을 하지 않거나, 다른 연구자가 공들여 조사한 자료를 인용 출처 없이 객관적 사실 인양 무단 도용하거나, 간단히 인용 출처만 밝히고 빌려와 논문 수를 늘리는 박사학위자가 되어 간다고 했다. 

영남지역 박사과정생 I는 “막 논문을 생산하면 어디에 게재가 쉬운지 알게 된다. 한 10페이지 되는 논문을 받아주는 데도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박사과정생들을 중심으로 구축된 연구비 지원과 평가 방식은 단기간 내에 연구 업적을 생산하도록 박사과정생을 사회화한다. 박사과정생에게 연구 역량의 한계란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런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등재 논문 기준으로 연구 성과를 요구하는 상황은 박사과정생의 위치성을 의식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개인 지원 늘리고, 재학‧논문 집필 시기 나눠 지원해야

효율성이 떨어지는 정부 지원과 자신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느끼는 박사과정생들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연구진이 가장 먼저 제안한 것인 박사양성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국내 박사과정의 존재 이유는 한국사회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력’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했다. 

박사과정생에 대한 대학원 교육의 ‘방목’을 타개하기 위해 박사로서의 원천기술(언어‧번역능력, 방법론역량, 자료수집능력, 아카이브 장악력)을 제공하는 플랫폼도 제안됐다. 미국 대학원은 다양한 관심을 받아줄 교수진과 ‘규모의 혜택’이 두드러지나 국내 대학원은 그렇지 못하다며 대학원 안팎을 가로지르는 네트워크를 확충하고, 확대해 결핍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김인수 대구교대 교수(사회과교육과)도 “간학제적 연구공간을 활성화해야 한다. 번역원, 강독회, 아카이브, 자료수집과 분석 방법론 등 원천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관과의 연계 등이 활성화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은 국내 대학원에 진학한 박사과정생은 규모가 큰 미국 대학원에  비해 '규모의 혜택'을 받기 힘들다며 대학원 안팎을 가로지르는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진=픽사베이

박사과정생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평가방식에 대한 제안도 제기됐다. 박사논문 연구장학금, 박사논문 집필장학금 등 박사과정에 대한 단계적 지원을 학내 경쟁을 통해 받을 수 있는 미국 사립대의 사례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태학사’ 등을 통해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는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공동 연구사업을 통한 지원보다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B유형 처럼 직접 개인을 지원하는 사업을 확장하고 체계화할 것도 제안했다. 가령,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B유형을 박사과정 진학에서 졸업에 이르는 주기에 맞춰 △박사과정 재학 시기(2년) △논문 집필을 위한 현장 연구(해외 조사 포함) △박사논문 집필 1년 등과 같이 세분화해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다.

연구 업적 평가방식에 대해서는 박사과정생의 단기간 성과 제출 시스템의 한계를 짚었다. 장학금과 연구비 수여 이후 연구의 성과로 제출하는 결과물의 형태를 다양화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연구비를 지원받은 후 제출하는 결과물로 꼭 논문을 요구하는 것은 외국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박사과정생에 대한 평가 기준은 과정생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어야 하고, 지나친 결과 중심의 평가가 대형 연구자의 양성을 저해하는 측면이 크다고 했다. 

김인수 교수는 국내박사양상모델에 대해 “교수시장과 학문권력에서 국내 인문사회분야 연구자들의 위치와 관련된 것”이라며 “‘국내에서 박사논문을 쓰고자 하는 이들은 과연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그 고유성은 무엇인가’에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인재는 어떤 인재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누락된 채 제도적 생존과 재생산을 위해 박사과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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