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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54]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의 진실
[한민의 문화등반 54]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말의 진실
  • 한민
  • 승인 2023.02.14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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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 문화심리학자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싫어하기 때문이란다. 돈을 많이 준대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없단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제조업 계통의 중소기업 대표님들, 그리고 60대 이상의 어른들이다. 195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20대를 보냈을 그들의 시각에서 ‘요즘 젊은이들’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변변한 일자리 자체가 없던 시절, 식구는 많고 많은 식구가 굶지 않으려면 찬밥 더운밥 가릴 계제가 아니었다. 자식을 가르칠 여유가 되는 집은 많지 않았고 대학이라도 한 명 보낼라치면 땅을 팔고 소를 팔아야 했고, 선택받지 못한 자식들은 학비를 보태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했던 날들이었다. 

그때는 쉬는 시간도 변변히 없이 주말에도 일을 해야 했다. 가혹한 노동조건과 박봉은 끌려가 매를 맞고 몸에 불을 붙이는 사람들이 나타나고서야 조금씩 개선되었다. 대학을 나와야 좋은 조건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일했던 이유는 자식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삶을 물려주기 위해서였고, 이 사회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돈 없다고 못 배웠다고 무시당하는 건 우리로 족하다. 부모님들은 당신 입을 거 먹을 거 제대로 챙기지 않고 자식들 잘 되기 위한 삶을 사셨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제법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집집마다 자동차와 텔레비전, 냉장고와 세탁기, 가족들 수만큼 핸드폰이 있으며, 자식들은 깨끗하고 냉난방 잘 되는 자기방 책상에서 공부도 열심히 한다. 이 시대의 대학 진학률은 100%를 초과한다. 그런데 왜.

그런데 왜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하려 하지 않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다. 필자가 방금 읊은 지난 역사에 답이 있지 않다. 부모님들이 그렇게 열심히 일하신 덕분에 당신들의 자녀들은 힘들고 돈도 제대로 못 받는 일을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대학도 다니고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스펙도 탄탄하게 쌓은 당신들의 자녀들은 그 학력과 경력과 스펙에 맞는 직장에 다니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이 자식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 아니었던가. 모든 것을 바쳐 자식들에게 그 능력을 갖춰준 다음, 이제 잘 살고 싶은 자식들이 힘들고 돈도 못 버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그들을 비난하다니 어폐가 대단하다.

이쯤에서 짚어봐야 할 사실은 어르신들이 지칭하는 ‘젊은이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내 자식은 편한 직장에서 돈 많이 벌기를 바라면서 남의 자식들이 힘든 일 안 한다고 나무라는 거라면, 요즘 젊은이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시각은 재고가 필요하다. 남의 자식 고생하든 말든 내 자식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어른으로서 좀 부끄러운 생각이 아닌가.

자식들이 힘든 일을 기피하는 이유에는, 내 자식을 위한 말이라고는 하나, 힘든 일 하고 돈 못 버는 이들을 실패자라 비난했던 부모님들의 가치관도 지분이 크다. 공부 안하면 너도 저렇게 힘든 일 하면서 산다는 말을 듣고 자란 이들이 선뜻 힘든 일을 할 거라 생각하는 것도 보통 어폐가 아니다.

무조건 남보다 앞서야 하고 밀려나면 그걸로 끝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살벌한 무한 경쟁사회 대한민국은 내 자식이 잘되기를 바랐던 평범한 어른들이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개개인의 성공과 실패도, 비혼과 저출산도 모두 개인의 능력과 성향 탓이라는 근본 없는 능력주의가 판을 치게 된 것도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어른들의 생각이 이어진 것이 아닐까.

아마도 어르신들이 요즘 젊은이들에게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씀은, 처음부터 원하는 것을 다 갖기는 어려우니 어려움을 이겨내고 원하는 바를 얻을 때까지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일 터이다.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이끌어갈 탄력성과 회복력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젊은이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온 어른의 입장에서 그들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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