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교육 기관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성균관의 기원은 중국의 상고시대까지 올라간다. 서기 372년에 고구려의 소수림왕이 대학(大學)을 세웠다고 한다. 조선시대 성균관은 성균관대학의 전통으로 이해된다.
다양한 교육기관이 존재했지만, 현재와 같은 대학의 형태는 서구 중세에서 시작됐다. 12~13세기에 파리와 볼로냐 등지에서, 학부, 칼리지, 교육과정, 시험, 졸업, 학위를 특징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이 등장한다. 중세시대에는 도서관이나 실험실, 건물 등이 없었다. 프랑스의 법률가 파스키에(1529~1615)는 중세대학을 사람들의 모임으로 규정했다. 현재 기준으로 보면 초기의 대학은 대학인가를 받지 못하거나 부실대학이다.
19세기 말에 보성전문, 숭실전문, 연희전문 등이 있었으나,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조선총독부는 조선교육령 등으로 규제했다. 이때에도 부실이라는 잣대가 등장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도 대학은 설립과 운영까지 규정하는 규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 대학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대학은 우리의 희망이었다. 부모가 자식의 학사모를 쓰고 졸업식장에서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비싼 등록금을 부담하면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학부모는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기업에 취업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부 학부모들 자식을 소위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사교육에 매달렸다.
교수라는 직업이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사회적 위상을 나타낸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학은 지역의 발전을 선도하고, 국가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사람들은 대학을 지역에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좋은 대학을 더 만들기보다는 사교육 폐지가 교육정책의 목표가 된 적도 있었다. 지역 사회는 대학이 지역의 발전에 기여하길 바랐다. 정부는 반값 등록금을 고집했다. 대학의 학생 선발권은 공정의 잣대로 폄훼된 지 오래다. 대학 교육의 결과를 무시하는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해괴한 정책이 시행됐다. 여러 이유로 대학은 사람들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정상화돼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대학의 자유를 부여하겠다고 나섰다. 반가워야 할 정책 변화이지만 정부의 지원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교육부가 내놓은 혁신방안은 규제혁신과 권한이양, 그리고 구조개혁이다. 고장이 난 축음기가 같은 소리를 반복한다는 느낌이다. 학과 신설 및 정원 조정은 이미 많은 대학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고, 가장 중요한 규제는 총정원 규제다.
사립대학 재산처분을 유연화한다고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더욱이 일반재정지원사업은 규제뿐 아니라 규모도 문제였다. 지방대 지원 계획수립 권한을 지자체에 이양한다는 조치는 구조조정의 책임회피로 읽힌다. 등록금과 교원 및 시설 규제 등으로 발생한 대학 운용의 고비용 체제와 수입구조 악화라는 모순된 규제의 틀은 그대로다.
학생과 교수들의 모임이라는 대학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자율이 보장돼야 한다. 사회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대학을 수단으로 활용만 할 것이 아니다. 이제 대학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대학의 본질적 기능인 교육 기능과 연구기능을 강화하는 것만이 대학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