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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미국 例外主義’에 대한 역사적 객관화
과장된 ‘미국 例外主義’에 대한 역사적 객관화
  • 이충훈 미국통신원
  • 승인 2006.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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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_이민에 관한 새로운 시각 보여주는 책들

미국이 다른 국가나 지역과는 다르다는 관념, 즉 미국 예외주의는 멀게는 토크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토크빌은 1835년 출간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이 그 기원과 민족적 성격, 그리고 역사적인 진화과정과 정치적, 종교적 제도 등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하다고 결론 내린다.

미국 예외주의, 토크빌과 엥겔스의 관찰에 기원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의 결론을 도출하는 데 있어 이주문제는 핵심적인 고려사항 중 하나였다. 특히 그는 미국의 예기치 못한 급격한 성장을 미국의 무제한적이고 관대한 이주 정책과 그러한 이주를 수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광대한 토지자원 및 토지사용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에서 발견했다.

즉, 로크적 소유관념에 기반한 이주자들의 토지소유와 그것에 기반한 자유로운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 속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예외성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그가 발견한 가난한 흑인들과 유럽 이주자들로 인해 미국 사회가 ‘이주의 위기’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이주와 관련해 미국 예외주의를 주장한 이는 토크빌만은 아니었다. 1893년에 엥겔스는 미국에서 사회주의정당이 존재하기 힘든 이유를 이주에 따른 노동자 계급 내부의 인종적, 문화혈통적 분화에서 찾았다. 이주는 노동자 계급을 토박이와 외국인으로 나뉠 뿐만 아니라, 후자는 다시 아일랜드인, 독일인, 체코인, 폴란드인, 스칸디나비아인, 그리고 흑인 등으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주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인종적·문화혈통적 분화 속에서, 진정으로 강력한 비정상적인 동기부여 없이는 노동자 계급이 하나의 단일한 정당을 형성하는 것은 힘들다고 엥겔스는 결론 내린다. 이러한 엥겔스의 주장은 이후 좀바르트에 의해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발전하지 못하는 핵심 요인으로서 간주되면서 미국 예외주의 담론의 한 축을 형성했다.

최근에 출간된 이주문제에 관한 세 권의 책은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미국 예외주의의에 도전한다. 우선 졸버그(Ari Zolberg)의 ‘A Nation by Design’(하버드대출판부, 2006)은 식민지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미국의 이주정책을 국제 자본주의 및 국가 체제와, 자본 대 노동 및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국내 세력들 간의 관계속에서 추적함으로써, 토크빌이 미국을 방문했던 시대가 토크빌이 언급한 것처럼 무제한적인 이주가 허용되던 시대가 아니라, 각각의 주(state)나 연방 차원에서 다양한 이주정책이 관철되고 있었던 시기였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주 문제, 특히 국가의 이주 정책을 미국 예외주의라는 틀에서 보기보다는, 다른 국가와의 비교적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다.

이주자들의 노동조합도 가능해

파인(Janice Fine)의 ‘Worker Centers’(코넬대출판부, 2006)는 1970년부터 현재까지 성장한 이주자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노동센터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이 저작의 핵심적인 주장의 하나는 이주자 공동체의 내부에서 노동조합이 형성될 수 있고 노동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엥겔스가 노동 운동이나 사회주의 정당 건설에 부정적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한 인종이나 문화혈통적 집단이 사실상 노동운동의 기반이 돼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의의는 그람시적인 의미에서 미국 노동운동의 예외주의를 주장한 카츠넬슨(Ira Katznelson)과 비교해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이미 20여년전에 출간된 ‘City Trenches’(시카고대출판부, 1981)에서 그는 미국의 노동운동이 유럽에 비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를 도시에서 노동자들이 진지를 구축하는 방식에서 찾았다. 즉, 노동의 논리로서 구성되는 작업장과는 달리, 그들의 삶의 공간인 공동체라는 진지의 구성 논리는 이주자들의 인종이나 문화혈통적 집단의 논리에 따라 구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공간과 삶의 공간의 철저한 분리를 그는 미국 예외주의의 핵심으로 파악했다.

이주의 문제를 통해 미국 예외주의에 직간접적으로 도전하는 두 저작과는 달리, 헤이덕(Ron Hayduk)의 ‘Democracy for All’(Routledge, 2006)은 미국 예외주의가 간과해왔던 예외성에 착목한다. 이주자들의 투표권에 초점을 맞춘 그의 연구는 미국에서 1776년부터 1926년까지 40개 이상의 주에서 시민권과 상관없이 이주자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초기 미국인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투표권의 부여를 이주자들이 미국사회로 통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파악해 장려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 이주자들에 의한 투표가 기존의 정치, 경제적 지배세력에게 위협이 되면서, 그들의 투표권은 박탈됐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미국 예외주의와 이주 문제와 관련한 저작들의 최소한의 공통점은 기존 미국 예외주의의 탈역사적으로 획일화된 관념에 대한 비판이라 볼 수 있다.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는 토크빌에 기원을 두고 있든, 엥겔스에 기원을 두고 있든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이 시공간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관념에 취약하다.

그러나 미국인들에게 ‘예외’는 ‘일상’이다

이러한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적 고정성은 미국을 연구하는 데 있어 방법론적 전략을 구축하는 데 동어반복의 오류나 종속변수에 초점을 맞출 때 나타나는 독립변수의 과장을 피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좀더 중요한 문제는 기존의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적 고정성이 이주자들에게 미치는 효과일 것이다.

물론 립셋(Seymour Martin Lipset)이 적절히 언급하고 있듯이 미국 예외주의의 내용은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다. 즉,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예외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주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사유나 운동은 비미국적으로 취급되거나 부정적인 개념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데 있다. 즉, 미국에서 미국 예외주의는 ‘예외’가 아닌 반면에, 그러한 이주자들의 사유와 운동은 일탈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최근의 세 저작이 중요해지는 맥락은 바로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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