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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學이 경화사족의 전유물? … ‘經世學的 經學’ 아닌가
實學이 경화사족의 전유물? … ‘經世學的 經學’ 아닌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6.07.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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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_ 한림과학원, ‘실학의 재조명’ 학술대회(7월 12일) 개최

한림과학원이 개최하는 ‘실학의 재조명’ 학술대회에서 ‘17세기 실학의 정치 사상’(정호훈 연세대), ‘조선후기 경화사족의 대두와 실학’(유봉학 한신대), ‘조선후기 유학텍스트 연구와 경세학적 경학’(김문식 단국대), ‘조선후기 自然 인식의 변화와 實學’(구만옥 경희대) 등 각 분야별로 총 6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발표문들은 대체로 기존 실학연구의 한계를 나름의 관점에서 규정한 다음 일부는 실학이란 범주를 명료화하는 것으로, 다른 일부는 실학이 아니라 조선후기 사상지형을 제대로 보는 쪽으로 나아간다. 가령 유봉학 교수는 “실학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확장되었다”며 “실학은 숙종 이후 정조시대까지 주로 18세기에 조선사회의 주도층으로 대두한 경화사족의 학풍”이라고 한정짓는다.

반면 김문식 교수는 “조선후기 ‘실학’의 특징을 주자학과 무관한 것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수도권 이외의 지역의 학문 연구를 모두 배제하는 결과가 된다”라고 설명한다.

이런 차이는 아마 유 교수가 실학을 배타적 범주로 간주하고, 너무 마음 좋게 경화사족에게 선물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에 비해 김문식 교수는 ‘조선후기 학풍의 변동’을 명료히 밝혀냈다는 점에서, 구만옥 교수는 조선후기 학자들의 학풍 변동이 ‘물질세계’에 대한 인식의 확장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그와 관련한 연구과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먼저 김 교수는 “조선후기 사상의 특징은 지역적 특색이 강화”되는 것이며 이것은 “서적의 보급 상황과 각 학파별 학자들의 거주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파악한다. 사서오경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에 집중되었다면, 주희 텍스트 연구는 이황에서 송시열로 주도권이 넘어간 이후 노론계 학자가 거주하는 서울 충청권에, 이황 텍스트 연구는 남인계 학자가 거주하는 경상권에 집중됐고, 송시열 텍스트 연구는 노론계 학자의 거주지와 일치했다. 그 중에서 주희 텍스트 연구는 18세기에 절정에 올랐는데, 이황과 송시열 텍스트 연구는 18세기 이후 더욱 강화되었다. 실학과는 무관하게 당시 경학의 메인스트림이 이러했다는 것.

▲다산문화관 안에 위치한 다산 생가 ©

이런 경학 연구는 정약용에 이르러 ‘경세학적 경학’을 낳았는데, 그것은 ‘先王·先賢의 본지를 현실에 응용하는 학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정약용에게 있어 육경사서에 관한 경학 연구는 經書에 나타나는 선왕의 제도를 파악하는 단계였고, ‘一表二書’로 대표되는 경세학 연구는 경학 연구에서 발견한 옛 제도를 시대적 상황에 맞게 변통하여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이었다고 부연한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파악과 적용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따지지 않았다. 특징적인 것은 이런 ‘경세학적 경학’의 출현에는 漢의 훈고학을 리모델링한 청의 ‘고증학’도 영향을 미쳤지만, 주자학 속의 경세학적 요소가 발현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한다는 점. 오히려 김 교수는 고증학은 출세를 위한 가벼운 학문이라는 게 당대 경학자들의 인식이었다는 점을 “중국의 사대부들은 聲律과 書畵로 명예와 승진의 사닥다리를 삼을 뿐”이라는 서화수의 말을 인용하면서 강조한다.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인과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이중환의 택리지 ©
구만옥 교수는 “物理에 대한 재인식이 과학기술이라는 분야에 새롭게 주목하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며 당대 ‘실학자’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의 정도와 수준은 어떠했는지, 전통과학의 토양 위에서 서양과학을 받아들였지만, 그 경로와 그를 통해 이룩한 새로운 자연학의 체계가 무엇인지 밝혀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기존 논의와 관련해 유학 속에는 맹자만이 아니라 순자도, 주자학뿐만 아니라 양명학도 포함되기에 그 안에서 성리학을 넘어설 계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물론 “실학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없다고 그걸 주자학과 동일시할 필요 또한 없다”며 실학 관련 양극화론에 경종을 울린다.

그 외에 도시경제의 성장과 도시문화의 발흥 속에서 지식세계의 확대를 살핀 고동환 교수의 다음과 같은 결론도 눈길을 끈다. 즉, 여전히 “治人과 經世의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상체계”인 실학과는 달리, 18~19세기에 문자해독층이 확대되고 도시문화가 발달하면서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민중들의 지식이 존재했다는 것에 대한 환기가 그것. 실학이라는 흐름이 있긴 있었다면 그것은 주자학의 여러 흐름과의 비교를 넘어, 이런 민중들의 지식체계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고찰되어야 함을 지적하는 발언으로 읽힌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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