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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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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승우
  • 승인 2023.02.0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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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진 지음 | 김철웅 옮김 | 푸른역사 | 264쪽

지치至治의 세상을 부러워하다

인천을 떠나 중국 상하이, 캐나나 밴쿠버를 거쳐 워싱턴에 부임한 이범진이 처음 본 미국은 놀랍고 부러웠다.

철도로 뉴욕에 이르는 동안 미국을 보고 “길가에 집들이 즐비하고 휘황찬란 …… 대체로 모두 화기애애하고 스스로 만족하니 더할 나위 없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 (至治)의 세상”이라 했을 정도다.

아침에 미국 학생들이 등교하는 광경을 보고 “문명 진보의 풍속이 날로 상승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부럽게 한다”고도 했다.

귀국 후 고종에게 활동을 보고할 보고서 작성을 위한 업무일지 성격의 이 기록에서 건물 내의 스프링클러와 소방차 등 신문물과 근대 문명에 대한 찬탄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조선의 자강自彊과 국체 보전을 모색하다

단순한 견문록에 그치지 않는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의 견문록 《미속습유美俗拾遺》처럼 체계적이지는 않아도 부국강병을 위한 선진 제도의 소개가 곳곳에 담겼다. 미국 의회의 토론 과정을 보고 “교묘하게 변론하면서 상대방을 비평하니, 부통령은 조용히 앉아서 듣고 많은 사람의 논의를 취한다.

비록 사적인 친분을 개입시키고자 하여도 조금도 용납되지 않으니, 진실로 좋은 법이고 아름다운 규정이다”라고 하는 대목이 그런 예다.

을미사변 후 “원수와 같은 하늘 아래 살 수는 없다”며 미국으로 건너와 공부하던 김헌식 등 일본 유학생 7명을 보고는 “그 충성과 절의의 기상이 가상하다”고 감탄하기도 한다.

약한 국력과 열악한 예산을 고민하다

열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조선의 약한 국력과 넉넉지 않은 공사관 재정에 관한 고심도 엿보인다. 지진이 발생한 에콰도르의 공사관이 각국 공사관에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에 응하지 못하면서 “보기에 매우 측은했지만 …… 원조를 하지 못했는데, 만일 각국이 본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나도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고 적었다.

다른 나라 공사의 연회 초청을 받고는 안 가자니 거만하다는 평을 받거나 교섭에 지장을 받고 가자니 답례로 연회를 열 여유가 없어 고민하는 대목도 실렸다. 그러면서도 늙은 말 같은 청나라와 강소국 벨기에 등을 비교해 “나라의 강약과 흥망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나라의 크고 작음에 달려 있지 않다”며 분발을 다짐하기도 한다.

꼼꼼한 해제와 주석으로 가치를 더하다

이 책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한미외교사를 복원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벌이는 사업의 일환이다. 박정양의 《미행일기》,《미속습유》와 이상재의《미국공사왕복수록》을 펴냈으니 이 책은 그 후속 작품이다.

이 책 또한 단순한 번역을 넘어선다. 이범진 관련 논문을 쓴 바 있는 옮긴이가 꼼꼼한 해제와 주석을 붙여 일반 독자들의 이해와 읽는 맛을 돋우는 한편 원문을 붙여 관련 연구자들에게도 충실한 자료 구실을 하도록 했다.

여기에 본문처럼 현대어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원래 《미사일록》 뒷부분에 실린 이범진 개인의 ‘영어 연습장’을 원문 별점으로 실은 것이 흥미롭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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