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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일본, 모두에게 친절한 디지털화는 가능할까
[글로컬 오디세이] 일본, 모두에게 친절한 디지털화는 가능할까
  • 정지희
  • 승인 2023.02.10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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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코로나 유행을 계기로 일본 정부가 디지털화에 박차를 가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2021년에 있었던 디지털청 창설이다. 목표는 ‘디지털 사회 실현’으로 ‘포스트 코로나의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마이넘버 카드의 보급과 행정에서 도장과 종이와 현금의 퇴출이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 19의 심각한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일본 정부는 전국의 디지털화를 주도할 디지털 에이전시를 설립했다. 사진=일본정부 홈페이지

3년여 만의 출장을 앞두고 전에 없이 온라인으로 방역·입국심사·세관신고 관련 정보를 사전에 입력하고 QR코드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낯설게 변했을 일본에 대한 기대 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우려 반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공항에 내려 QR코드를 받았냐는 질문에 답하자마자 종이를 한 장 내준다. 일본 체류 중 방역 수칙 안내문이다. 같은 시기에 출장 온 다른 연구자 선생님도 그 종이를 받는 순간, ‘(내가 알던) 일본에 왔구나’라고 실감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물론 이런저런 변화들이 생긴 건 분명하다. 예를 들면 출장 때마다 이용하던 호텔의 체크인이 키오스크 입력 형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투숙객 주소에 일본 도도부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갈 수 없다. 문의하니 어쩔 수 없이 그냥 아무 현이나 입력하란다. 기술은 가치중립적일지 몰라도 결국 그 기술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회와 문화에 뿌리내린 작법과 고정관념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곳도 있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자료가 있는 도서관은 사전에 열람 신청을 받는다. 여전히 팩스나 우편으로만 받는다. 이른바 3밀(밀폐, 밀집, 밀접)을 피하기 위해 동시 입장인 수도 다섯 명으로 제한하는데, 입장은 예약할 수도 없고,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려주지도 않는단다. 안전하게 오픈 런을 시도했다. 일착(一着)이다. 그런데 아뿔싸, 가방을 사물함에 넣었으니 수중에 백 엔 동전이 없다. 일본 사물함은 백 엔 동전을 넣어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깜빡한 것이다. 공항에서부터 대중교통이나 편의점, 음식점과 카페에서 모두 신용카드나 선불 교통카드로 캐시리스 지불이 가능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태다. 

다행히 내부자용 사물함을 내어줘 입장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복사기에 신용카드는 사용할 수 없다. 동전이나 천 엔 지폐가 필요하고, 복사카드 자판기에도 천 엔 권만 들어간다. 그나마 지폐가 있어 다행이었다. 복사를 마치고 나오니 입장 대기자 다섯 명이 의자에 줄지어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면서 방역 지침을 지키자면 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위의 도서관은 극단적인 경우다. 직접 겪은 코로나 시대 일본의 디지털화의 인상은 ‘정중동’에 가깝다. 분명히 디지털화와 캐시리스화가 이전에 비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전의 방식도 한꺼번에 사라지기보다는 새로운 방식과 중첩돼 있다. 국회 도서관은 일반 자료의 열람과 복사 신청, 자료 및 복사물 준비 완료 공지의 전 과정을 디지털화했지만, 특수 자료실에서는 신청서를 작성해 직원에게 직접 건네줘야 하고, 번호표를 건네받기도 했다. 비밀번호식도 더러 보였지만, 사물함을 이용하려면 대개 100엔 동전이 필요했다. 동네 노포들은 여전히 현금만 받는 곳도 많은 한편, 교통카드로 지불할 수 있었던 백화점 지하상가 중에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만 받는다는 곳도 생겼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이런 일본이 뒤처져 보인다고 한다. 종이와 현금 없는 행정과 생활이 당연한 그들의 감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한편 내 주변의 연구자들은 일본이 상대적으로 디지털 약자에게도 친절한 사회임을 강조한다. 실제로 디지털청은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인간 친화적인 디지털화’를 목표로 내걸고 디지털 격차 해소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다음 출장 때는 신용카드와 현금에 더해 모바일 결제도 준비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번잡한 현실이 누군가는 제대로 설명도 듣지 못해 남겨지는 게 당연시되는 현실보다는 견디기 쉽지 않을까. 

1월에 코로나19 사망자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한 와중에도 기시다 내각은 올봄부터 코로나19를 독감과 동급 감염증으로 하향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고령자 사망 급증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선포를 앞당기려는 일본. 과연 모두에게 친화적인 새로운 디지털 사회로의 이행은 가능할 것인가.

 

 

 

정지희 
서울대 일본연구소 HK교수

서울대 동양사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UCSD)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일본 근현대 미디어 사회문화사이며, 최근 저작으로 『일본 미디어와 전후 민주주의』(2022), 『전간기 일본, 냉전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시선 그 너머』(2021), 『점령기 일본의 진상 폭로 미디어』(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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