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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미니멀리스트 공동체’로 탄생했다
대학, ‘미니멀리스트 공동체’로 탄생했다
  • 김정규
  • 승인 2023.02.10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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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_『미래가 있던 자리』 아네테 케넬 지음 | 홍미경 옮김 | 지식의 날개 | 416쪽

학문 위해 자발적 가난 선택...기부로 교수 지원
현대의 대학은 너무 비대하고 관료화·상품화 전락

소크라테스는 광장에서 살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정 수입을 포기하고 재산과 명성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테네 시민들이 통찰과 진실을 구하거나 자기 영혼의 안녕을 생각하지 않고 재산, 보물, 명성 따위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비난했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행동은 점잖은 아테네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는 결국 신을 모욕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소크라테스의 흉상이다. 소크라테스는 재산과 명성을 신경 쓰지 않고 진리를 설파했다. 사진=위키피디아

시노페의 디오게네스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극단적인 형태로 실천했다. 거리에서 구걸로 끼니를 때우고 항아리에서 잠을 자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자기의 철학을 설파했다. 이 두 철학자는 ‘더 적게 가지려고 노력하는’ 미니멀리스트의 원형이라 할 만하다. 

12세기에서 13세기로 가는 수십 년 동안 유럽에서는 자발적인 무소유, 즉 미니멀리즘 붐이 일었다. 십자군 원정과 상업혁명은 유럽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승자뿐 아니라 수많은 패자를 양산했고 빈부격차가 커졌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갑자기 가난해진 이른바 ‘벼락 거지’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 즉 사회 붕괴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일종의 ‘사회 보호 운동’이 나타나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미니멀리즘인데,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 발도파, 베긴회 등이 활발하게 활동했고, 시민들도 이들을 적극 지원했다. 

이때 오늘날 대학의 기원으로 볼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조직이 볼로냐와 파리에서 형성되었다. 교수와 학생들의 사적인 연합이었다. 학생들은 교수를 구했고, 기부를 통해 그 교수들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하는 ‘학습 공동체’였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학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위해 생계를 위한 고정 수입과 안락함, 부를 포기했다. 다시 말해서 학문을 위해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한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의 오래된 대학들은 이런 공동체의 주도로 생겼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아네테 케넬 독일 만하임대학 교수가 쓴 『미래가 있던 자리』에 나온다. 이러한 대학의 탄생 과정과 정신은 최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의 대학들이 한 번쯤은 반추해 볼 만하다. 오늘날의 대학은 너무 비대하고 관료화했으며 상품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니멀리즘 외에도 대안경제에 관한 다양한 역사적 사례들을 소개한다. 보덴호 어부들이 만든 조합에서는 공유경제, 아비뇽의 생베네제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는 크라우드 펀딩, 거부(巨富) 야코프 푸거가 조성한 ‘푸거라이’에서는 사회주택의 개념을 볼 수 있다. 

인류 문명의 성장 한계를 분명하게 경고한 1972년 로마클럽 보고서 이후에도 우리는 쓰레기 생산기계를 빠르게 돌렸고, 수명이 지극히 짧은 소비재 생산에 집중했다. “연간 4억 7천만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되며 그중 4분의 1 이상이 포장재다. 비닐봉지의 평균 사용시간은 25분이다.” 케넬 교수는 이 책에서 이제 ‘지속 가능성’은 우리가 가진 유일한 생존전략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른 대안은 없다’고 
외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논리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영국 <BBC> 방송이 2009년에 27개국 2만 9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치명적 결함이 있어, 다른 경제시스템을 필요로 한다”라고 응답한 사람이 23%였다. “자본주의는 규제와 개혁을 통해서 다뤄야 할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라는 응답까지 합하면, 거의 80%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불완전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자본주의는 잘 작동하고 있고, 규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덜 효율적으로 만든다”라는 응답은 단지 11%에 불과했다. 경쟁과 효율성이 절대선은 결코 아니다.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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