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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암리에 ‘셀프 스캔’…종이책 있어도 ‘PDF’ 별도 구매도
암암리에 ‘셀프 스캔’…종이책 있어도 ‘PDF’ 별도 구매도
  • 신다인
  • 승인 2023.02.07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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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시대, 출판 저작권이 위태롭다① 디지털 불법 복제 실태

코로나19 이후 대학의 급격한 디지털 전환은 출판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2021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서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면서 학술교재 출판사들은 평균 20% 이상의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분석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에 따르면, 이러한 디지털 불법 복제는 그 특성상 정확한 통계나 피해를 파악하기 어려워 출판사가 적절히 대응하거나 보상금을 분배 받기도 힘들다.

종이책에서 태블릿PC로 바뀐 대학 풍속도

“거의 다 아이패드를 사용해서 공부한다” 취재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들은 이야기다. 종이책이 사라진 대학 풍속도는 태블릿PC 사용률과도 연결된다.

경기 E대학 심리학과를 다니는 강씨는 “아이패드는 필수”라며 “대부분 학생들이 아이패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교수님도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강의자료를 PDF 파일 형식으로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울산 지역의 한 대학은 지난해부터 학생들에게 태블릿PC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기 시작했다. 대학에서 태블릿PC와 같은 디지털 기기는 이제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학생들은 종이책에 비해 가벼운 태블릿PC에 강의자료를 저장하고 필기하며 공부한다. 태블릿PC는 화면을 2~3개씩 띄어둘 수 있어 한쪽에서는 교수가 올려준 PDF를 보며 수업을 따라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르는 부분을 인터넷 검색하거나, 논문을 띄워두고 공부할 수 있다. 이런 용이성 때문에 학생들의 태블릿PC 보유율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국내 태블릿PC 보유율은 2020년 19%에서 2021년 24%, 2022년 36%로 최근 3년새 17%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2021년에 38%였던 19~29세의 태블릿PC 보유율은 2022년 50%로 상승했다. 10대부터 30대까지의 젊은이 절반가량이 태블릿PC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자랜드 관계자는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태블릿PC의 인기가 커진 배경에 대해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 전환이 유연해지면서 휴대성이 장점인 태블릿PC를 찾는 학생들이 점점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학생들 사이 만연한 ‘셀프 스캔’ 거래

필기 기능을 갖춘 태블릿PC같은 디지털 기기 시장이 커지며 무거운 교재를 PDF로 변환하는 북스캔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강원도 F대학 간호학과 3학년 하씨는 “간호학과 특성상 전공교재를 다 사야하니, 그룹을 만들어서 셀프스캔 해 PDF로 공유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에브리타임에서 구매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대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 거래되는 PDF파일은 정가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된다. 『성인간호학』을 정가로 사면 5만 원대 후반이지만, 에브리타임에서 PDF 파일을 받으면 1만 원대 후반에 거래되는 식이다. 교재를 불법 복제한 PDF 파일은 단순히 에브리타임에서만 거래되는 것이 아니라 친구와 선후배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오간다.

하씨는 “PDF를 사고 파는 것이 불법인걸 알기에, 선후배들 사이에서 오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나는 종이책도 사고 선배에게 부탁해서 PDF도 받았다”라고 말했다.

종이책을 샀음에도 같은 내용의 PDF 파일을 구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씨는 “PDF 형식의 교재가 좋은 이유는 싸고, 가볍고, 무엇보다 검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온라인에서 오픈북 방식으로 본다. PDF는 검색기능이 있기 때문에, 오픈북 시험에서 유리하다”라고 밝혔다.

광주 G대학 화학과 2학년생 나씨도 친구들에게 PDF 파일을 공유 받았다. 나씨는 지난 학기 교양 수업만 7개 들었다. 이중 지정교재가 있었던 수업은 6개였지만, 2개의 교재만 구매하고 나머지는 모두 친구들에게 PDF 파일을 공유 받거나 에브리타임 중고책 거래방에서 구매했다. “원래 5만원 하던 책을 2개로 나눠서 PDF 파일 각각 8천 원씩에 팔더라”고 설명했다.

에브리타임 중고책 거래 게시판에 들어가면 ‘00책 PDF팔아요’같은 게시물이 쉽게 눈에 띈다. 이러한 PDF 파일 거래는 주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나 에브리타임 쪽지를 통해 거래된다.

“교수님이 단톡방에 PDF 파일을 올려줬다”

경기 H대학 융합예술학과 2학년 김씨는 지난 학기 교수에게 책 PDF를 받았다. 김씨는 “교수가 카카오톡 단톡방에 책 PDF를 올려주었다”며 “교수님이 올려줬기에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교수가 교재를 스캔해서 PDF를 공유하거나 제본집을 사라고 말하는 사례는 김씨만의 일이 아니다. 서울에 위치한 I대학 디지털콘텐츠학과 4학년생 박씨는 지난 학기 ‘캡스톤 디자인’이라는 프로젝트 수업을 들었다. 그는 수업을 들으면서 담당 교수에게 참고용 책 추천을 부탁하는 메일을 보내자 “교수님이 메일로 책 PDF 파일을 보내줘서 인쇄소에서 이를 제본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에 위치한 J대학 정치학과 4학년생인 이씨는 지난 학기 6과목 중 교재가 있는 수업은 2과목뿐이었다. 이씨는 “한 권은 중고로 구했고, 다른 한 권은 교수님이 복사실에 제본을 맡겨놨다고 해서 제본집을 샀다”고 말했다. 이씨는 “여러 책에서 한 챕터별로 참고해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교수님이 따로 교재를 만들어준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강의가 전면 실시되면서 디지털 불법 복제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학 외부에서는 알기 어려운 형태로 공유되고 있어서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디지털 전환은 가속화되고 있지만, 저작권 침해도 가속화된 것은 아닌지 살펴볼 때다.

신다인 기자  sh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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