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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쟁점 총망라 … 체계화된 비판으로 연결
주요 쟁점 총망라 … 체계화된 비판으로 연결
  • 진시원 경상대
  • 승인 2006.07.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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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낯선 식민지, 한미 FTA』 이해영 지음|메이데이|276쪽|2006

한미 FTA가 국익을 신장시킬 것인지 그렇다면 국익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해영 교수가 펴낸 ‘낯선 식민지 한미 FTA’는 여러 면에서 의미 있어 보인다. 첫째, 한미 FTA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물 하나 없는 것이 우리 학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면, 한미 FTA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물을 출간한 것 만으로도 저자의 업적은 인정받을 만 하다. 

둘째, 이 책은 한미 BIT(양자간투자협정), 스크린쿼터, 한미 FTA 등을 거치면서 저자가 지난 10년간 일관되게 연구해 온 성과물들을 새롭게 묶어 낸 것이며, 이런 점에서 관변연구소가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반하여 계량연구로 단시간 내에 생산해 낸 연구물들과는 비교된다. 

담론 위에 조작, 조작 위에 이해관계

셋째, FTA는 경제게임이자 정치게임이며, 국내게임이자 국제게임이다. FTA는 무역, 교섭, 정치, 경제, 법 등 광범위한 영역들을 망라하며, 모든 산업 부문 뿐 아니라 위생검역, 무역구제 등 낯선 분야들까지를 모두 포괄한다. 결국 이처럼 복잡한 FTA를 학자 개인이 연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 책은 모든 영역들을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정리하고 있다.  

넷째, 이 책은 비판적이며 생산적이다. 비판적이라는 말은 저자가 신자유주의 담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생산적이라는 말은 저자가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는 데 있어서 구체적인 자료와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론 위에 담론, 담론 위에 조작, 조작 위에 숨겨진 이해관계’가 있다는 말로 한미 FTA를 둘러 싼 논쟁의 핵심을 찌른다. 즉, 신자유주의 세력이 추진 중인 한미 FTA는 과학적 이론틀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특정 세력의 상징조작에 기반하여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악화되던 미국/재벌/친미관료 간의 복합체가 한미 FTA를 통해 다시 공고화되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 본다면 한미 FTA 체결이 미국과 재벌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미국과 친미관료들 간의 한미동맹을 복원시키며, 정부가 초국적 자본인 재벌과 미국기업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전도사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필자의 전망은 설득력 있다.  

한미 FTA의 진실이 미국/재벌/친미관료 간의 복합체라면, 국익은 무엇이고 누구를 위한 국익인지가 밝혀져야 한다. 저자는 현재의 한국을 ‘신자유주의 경쟁국가’로 규정한다. 경쟁국가는 국가전체의 경쟁력에만 관심 가질 뿐, 국민 개개인의 복지에는 관심이 없는 국가다. 현 상태에서 경쟁력을 갖춘 집단이 재벌 밖에 없다면, ‘국민 위에 정부 있고, 정부 위에 재벌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정확하다. 따라서 저자는 한미 FTA로 증가된 이익을 취약계층에게 재분배하겠다는 정부의 동반성장론은 재벌위주 정책이자 ‘돈벌면 갚을게’와 같은 헛된 약속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부의 입장이 이러하다면 ‘정부는 국민경제의 조절자가 아니라 초국적 자본인 재벌의 정부’라는 필자의 분석은 진실에 가깝다.

저자는 ‘시장은 이제 국가에 대하여 탈규제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에 의한 국가의 역규제를 요청한다’고 진단한다. 시장이 국가를 규제하고 정부가 초국적 기업을 대변하는 상황은 근대 국제체제의 핵심 구조인 민족국가체제가 더 이상 한국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즉,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정부의 지원 하에 미국과 한국의 초국적 자본은 자신들만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킬 것이며, 그 결과 국민전체의 국익과 국민경제라는 용어는 상징조작 차원에서만 존재할 뿐 실질적으론 존재하기 어렵게 된다. 상징조작된 ‘국익’과 ‘국민경제’는 조작을 해체하고 표현하면 ‘재벌이익’과 ‘초국적 경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초국적 자본이 국익과 국민경제라는 의미를 해체시킨다면, 영토와 주권에 기반해 있던 (신)식민주의라는 개념은 그 의미가 퇴색된다. 그래서 한미 FTA 체결은 한국과 미국의 초국적 자본이 민족국가를 무기력화하는 데 일조할 것이며, 그 결과 한국은 국민주권과 국민경제, 그리고 국민 모두의 국익이라는 개념이 해체된, 지금까지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식민지’ 혹은 ‘초국적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이러한 암울한 결론은 한미 FTA 저지로 귀결되며, 저자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FTA는 미국형·EU형·일본형·개도국형 등으로 구분되며, 한국이 가장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미국형 FTA를 일방적으로 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경제 수준에 맞는 한국형 FTA를 설계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둘째, 통상절차법과 같은 국내 제도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부가 통상협상을 폐쇄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상황은 개선되어야 하며, 87년 체제가 확보해 준 절차상의 민주주의가 통상교섭에도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체결 이후의 대처에 대한 추가연구 필요

이 책은 대안 없이 반대만을 외치는 책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걱정하며, 정부가 관리 기능을 자발적으로 포기한 후 도래할 국가의 공동화와 정책공간의 심각한 위축을 우려하는 책이다. 한미 FTA는 제대로 알고 판단하는 지식인과 국민들의 자세를 요구하며, 이 책은 비판시각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시대적 필독서라고 보여진다.

궁금한 것은 한미 FTA가 저지되어야 한다면 다른 국가들과의 FTA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이후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이다. 그리고 저자뿐 아니라 다른 정치학자들도 이제는 한미 FTA의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연구물을 내놓을 때가 된 듯 싶다.

 

▲진시원/부산대·정치학 ©
필자는 영국 워릭 대학에서 ‘학습, 제도, 그리고 한국의 해외직접투자 정책: 일본과의 비교’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서로 ‘유럽연합체제의 이해’, ‘세계의 변화와 질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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