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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⑪ 이욱연 서강대 교수(중국문화학과)] 한 국가나 민족이 다른 국가나 민족으로부터 겪은 치욕스러운 역사 경험은 민족주의 성장에 좋은 토양이다. 그 치욕이 식민 경험이나 전쟁 등과 관련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근대 시기 제국주의에 반(半)식민 경험이 있는 중국의 경우 치욕적 역사 경험은 그 자체로 민족주의의 좋은 토양이 될 수 있다.하지만 중국의 경우는, 그런 치욕 역사 경험이 민족주의 토양으로 작용하는 데 조금 더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있다. 자신을 가장 수준 높은 문화를 지닌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중화주의 문화 전통, 여기서 연유하는 중국판 선민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높은 민족적 자존감, 문화적 유전자로서 중국인의 체면 의식, 그리고 그러한 자존감과 체면이 손상당했을 때 느끼는 치욕감과 그 치욕을 씻고 기어이 원상태로 되돌리려는 갚음 의식 등, 일련의 중국 문화의 핵심 요소가 결합되면서 치욕적 역사 경험이 중국의 독특한 민족주의로 발현된다.21세기 중국 부상 시대에 등장한 중화 민족주의가 바로 그러한 중국 민족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중국은 아편전쟁(1840년)부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1949년)까지 근 100년의 시기를 치욕의 한 세기, 치욕의 백 년이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서구라는 양이(洋夷)와 소일본(小日本)에 중국이 침탈당하면서, 망국멸종(亡國滅種)의 위기에 직면했던 때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직면한 위기가 사상 유례없는 치명적 위기였다.당시 중국 지식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3천 년 만의 대변국(大變局)은 중화민족의 위기이자, 중화 문명의 위기로 여겨졌다. 이민족인 몽골족이나 만주족에 정복당한 시기에도 중화 문명의 연속성은 이어졌고, 정복 이민족이 궁극적으로는 중화 문명에 동화됐다. 그런데 근대 위기 때는 사정이 달랐다. 전혀 이질적인 서구 근대 문명의 공세 앞에서 중화 문명은 연속성마저 단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3-09-12 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