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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정책, 질곡에서 벗어나려면
교육정책, 질곡에서 벗어나려면
  • 박부권 동국대 명예교수·교육학과
  • 승인 2017.09.2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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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박부권 동국대 명예교수·교육학과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계속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벌거벗은 학부모들의 욕망과 교리문답식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려운 교육방법 때문이다. 벌거벗은 욕망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선거판에서 포플리즘과 만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대학입시제도가 바뀐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교육정책의 첫 번째 과제는 학부모들의 벌거벗은 욕망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가 온 정성을 다해 설득한다면 그들이 벌거벗은 욕망을 내려놓을 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욕망 실현을 위해 정부에 맞서려 할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대학에 진학할 의향이 있으면서 대학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갖춘 학생들을 일차적으로 선발해, 각 일반계 고등학교의 성적 분포가 동일하도록 학생들을 무작위로 배정한다면, 내신 성적의 학교별 격차는 줄어들 것이고, 따라서 대학의 내신 성적에 대한 의혹도 줄어들 것이다. 이때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자격고사로 바꿔 변별력을 낮춘다고 해도 누구도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수능의 변별력과 내신 성적에 대한 불신도는 이렇게 반비례 관계에 있다.

또 다른 상상을 해보자. 만약 우리 정부가 수능의 시험양식을 단답형·사지 선다형에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논술·실험·실습형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는 수능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공정한 채점, 효과적인 관리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수는 있지만, 수능이 너무 어려웠다 혹은 쉬웠다 하는 수능 난이도에 대한 논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우리나라 수능에서도 단답형, 객관식 문제가 사라지고 문제의 답을 논술하거나 실험 혹은 실습으로 보여줘야 한다면, 우리 교육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십중팔구 초중등학교의 교실수업 풍경은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병폐는 학생 스스로가 찾아야 할 문제의 정답과 해법을 학교 교사와 학원의 강사가 대신 찾아주고 있다는 데 있다. 교사와 강사는 문제가 묻고 있는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거기에 이르는 해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학생이 간과하기 쉬운 문제 속의 함정은 무엇인지, 그리고 유사한 문제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를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가르쳐 준다. 학생이 해야 할 관찰, 이해, 분석, 비교 등을 교사와 학원 강사가 대신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학교 수업에서 정작 이해력, 적용력, 분석력, 창의력을 발휘하는 자는 교사와 학원 강사이고, 이런 능력을 키워야 할 학생들은 그들이 찾아주는 정답과 풀이과정을 암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해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에서도, 적용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에서도, 그리고 분석력을 키우기 위한 수업에서도 암기만 하려고 한다.

교육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스스로 이를 탐구하도록 유도하기보다, 지금까지 인류가 부딪쳐 온 문제들 중에서 해결과정과 답이 비교적 믿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선택해 가르친다. 그러므로 교육은 그 기본 성질에서 정답을 기계처럼 암기하기를 요구하는 교리문답과 유사하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사용하는 교육방법이 교리문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방법으로는 새로운 사회가 요구하는 학생들의 능력을 키워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프랑스식 바칼로레아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고, 내신중심 방식을 선택할 수도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무방하다. 양쪽은 모두 같은 목표에 도달하는 서로 다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실현하는 데 요구되는 조건과 시간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확고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보장 됐을 때만, 비로소 학부모들은 자신의 벌거벗은 욕망을 내려놓고, 교사들은 이미 습관으로 굳어버린 수업 방법을 바꾸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부권  동국대 명예교수/교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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